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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4강, 아빠는 우승… 당구계 ‘최강 부녀’

입력 | 2020-01-30 03:00:00

PBA 7차전서 화제 김병호-보미
“딸 세계챔피언 만들겠다” 뒷바라지, 보미 3쿠션 국내 1위까지 올려
아빠도 뒤늦게 맹연습하며 출전, 랭킹 前 1위마저 꺾고 첫 트로피
“파이널서 부녀 동반우승 할래요”




프로당구 PBA 투어 7차 대회 우승자 김병호(오른쪽)와 딸 김보미가 29일 서울 강남구 PBA스퀘어에서 큐를 든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보미는 “평소 아빠 옆에 바짝 붙을 일이 거의 없어 어색하다”며 웃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아빠가 우승하면 그 상금으로 제가 갖고 싶은 것 다 사준다고 했어요.”(김보미)

“우승할 줄 모르고 한 말인데 큰일이네요.(웃음)”(김병호)

김병호는 27일 끝난 프로당구 PBA 투어 7차 대회에서 47세의 늦은 나이에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4강에서 전 세계 랭킹 1위(현 11위) 프레데릭 쿠드롱(벨기에)을 꺾었고, 결승에서 다비드 마르티네스(스페인)에게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세트 스코어 3―3에서 마지막 세트를 1―7까지 뒤져 패색이 짙었으나 기적 같은 10점 하이런(연속 득점)으로 트로피를 손에 쥐었다. 관중석에 있던 딸 김보미(22)는 환호하는 아빠를 보며 눈물을 왈칵 쏟았다.

김병호는 당구 선수들 사이에 ‘보미 아빠’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 김보미는 3쿠션 국내 랭킹 1위까지 올랐던 유망주로 이번 LPBA 대회에서도 4강에 올랐다. 대구에서 당구장을 운영하던 아빠는 딸이 중학교 1학년이던 2010년 당구 큐를 쥐여줬다. 아빠는 “딸이 공부 쪽은 아닌 것 같았다.(웃음) 보미를 세계 챔피언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보미는 “고등학교 때까지 학교와 당구장만 오가며 ‘스파르타식’ 훈련을 했다. 그때는 아빠가 워낙 무서워서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고 돌아봤다.

김병호는 부녀가 함께 서울로 ‘당구 유학’을 온 날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2016년 7월 5일. 대구의 당구장을 접고 지인이 운영하는 서울 논현동의 당구장에서 10분 거리에 집을 얻었다. 월세를 아끼기 위해 PBA 투어 2차 대회 우승자인 신정주(25), LPBA 선수 최은지(28)와 함께 지냈다. 김병호는 “보미가 (최)은지랑 같은 방을 쓰고, 나는 (신)정주와 함께 지냈다. 집 보증금을 내고 나니 통장에 200만 원 정도가 남더라. 일자리도 쉽게 구해지지 않아 생계가 막막하던 시절이었다”라고 말했다.

이후 김보미는 아마추어 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하며 차세대 스타로 떠올랐다. 김병호도 선수로 종종 대회에 출전했지만 딸의 뒷바라지가 우선이었다. 딸이 성인이 되고 연습도 알아서 하게 되면서 아빠도 자신의 실력 향상에 시간을 쏟을 수 있게 됐다. 선수들 사이에서 ‘연습 벌레’로 통하는 김병호는 당구장에 갈 때 시간을 따로 정해두지 않는다.

6차 대회까지의 상금 랭킹이 70위에 머물러 1부 잔류조차 불투명했던 김병호는 우승 상금 1억 원을 받아 상금 랭킹이 7위까지 껑충 뛰었다. 다음 달 28일 열릴 시즌 왕중왕전 성격의 PBA 파이널에 출전한다. 남자 선수는 상금 랭킹 32위, 여자는 16위까지 파이널 출전 자격을 얻었다. LPBA 상금 랭킹 11위 김보미도 파이널에 나선다. 김보미는 “평소에 농담처럼 얘기했던 ‘부녀 동반 우승’이 진짜 가능하게 됐다. 아빠와 함께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싶다”며 의욕을 보였다.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