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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제2차 세계대전이 히틀러의 일탈?

입력 | 2020-02-01 03:00:00

◇준비되지 않은 전쟁, 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A J P 테일러 지음·유영수 옮김/560쪽·3만3000원·페이퍼로드




남의 잘못을 대신 사죄하는 일은 자신의 잘못을 깨우쳐 사과하는 것보다 쉽다. 그 남이 입 한 번 벙긋하지 않고 옴짝달싹 못 하는 죽은 자라면 더 용이하다.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내각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강제징용 피해자를 대하는 태도에 분개하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진심으로 사죄하는 것을 보라”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독일 정치인들은 혹시 ‘이 모든 악행을 저지른 히틀러라는 미치광이를 대신해 사죄합니다’라며 추모비에 헌화하고 무릎을 꿇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불경스러운’ 의구심의 근거를 영국 역사학자인 A J P 테일러가 1961년에 쓴 이 책에서 찾는다면 엄청난 비약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은 ‘히틀러의 전쟁’이었다는 당대의 해석을 논박한 이 작품을 읽으면 비약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저자는 주장한다. “히틀러가 제2차 세계대전을 계획했고, 오로지 히틀러의 의지가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 이 설명은 뉘우칠 줄 모르는 몇몇 나치주의자를 제외한 나머지 독일인을 만족시켰다. 책임을 전체 독일인에게서 히틀러에게 돌리는 것은 좀 더 간편한 조작이었다. … (그러나) 독일 국민들의 지지와 협조가 없었다면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히틀러는 독일 민족의 공명판(共鳴板)이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