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베스트셀러]1987년 종합베스트셀러 1위(교보문고 기준) ◇홀로 서기/서정윤 지음/1만 원·연인M&B
김소연 시인
당시 학교 앞 문구점에서 팔던 학용품 가운데 이 시의 가장 유명한 구절인 ‘기다림은/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좋다’가 장식된 연습장이 가장 인기 있었을 정도였다. 라디오에서는 거의 날마다 이 시를 낭송해 줬다. 이 시를 모르고 지낼 수 없을 정도로 늘 귀에, 눈에 흘러 들어왔다. 소문에 소문을 타고 ‘홀로 서기’는 계속 번져 갔다. ‘∼하기’라는 명사형으로 끝나는 모방 시들이 끝없이 생겨나기도 했다.
‘홀로 서기’는 출간되고 베스트셀러로 변해간 과정이 흥미로운데, 문학계의 영향력보다는 저자와 비슷한 세대의 지역사회 젊은이 사이에서 먼저 입소문을 탔다는 점이다. 문단의 영향권 바깥에서 먼저 만들어진 붐이었기 때문에 문학계는 이 시집을 중요한 시집으로 거의 거론하지 않고 지나갔다. 평가가 이뤄지기 전에 먼저 유명해진 출판물이 그러하듯 많이 팔렸고 유명하다는 것 외에는 그 가치를 따져 보지 않은 셈이다.
필자가 다시 구해 읽어 본 ‘홀로 서기’는 1980년대 시의 주류적 흐름 속 미묘한 공백지대에 자리 잡은 작품으로 느껴졌다.
1980년대는 소위 민중시와 노동시로 불리던 리얼리즘을 토대로 해 창작된 시가 한 축이고 미학적인 실험을 추구하던 시세계가 다른 한 축이던, 양극화가 절정을 이루던 시대였다.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대립으로 날을 세웠다. 리얼리즘을 추구하던 문학인들은 모더니즘을 추구하던 문학인들에게 “이름만 가리면 누가 쓴 작품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비슷비슷하기만 하다”고 개탄했고, 모더니즘을 추구하던 시인들도 리얼리즘을 추구하던 시인들에게 같은 말을 돌려줬던 시대였다.
반대 진영 시인들의 시세계를 몰개성으로 치부하며 양극화가 가속화되던 시대에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루트를 타고 ‘홀로 서기’가 출판시장을 장악해 버린 것이다. 실천적 책무와 미학적 탐구를 대신하여 감성이 시의 중심을 잡고 있었다. 이에 호응했던 대중은 어쩌면 비주류로서의 ‘홀로 서기’를 환영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