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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기둥 사이로 속삭이는 겨울

입력 | 2020-02-01 03:00:00

여행 |강원, 겨울 숲 세 곳|




강원 인제군 인제읍 원대리 자작나무 숲은 ‘작은 숲속나라’같은 느낌을 준다. 자작나무 특유의 향기가 머리를 맑게 만든다.

“올해 참 보기 힘드네요. 그립습니다.”

정말 그리워졌다. 실종 신고라도 해야 할까. 올해 눈(雪) 보기가 무척 힘들다. 하지만 눈도 보고 마음의 평화도 얻을 수 있는 곳이 있다. 눈 쌓인 겨울 숲. 접근성이 좋은 강원도 겨울 숲 3곳을 소개한다.

하얀색 자작나무와 눈의 컬래버레이션

강원 인제군 인제읍 원대리 일대 자작나무 숲은 축구장 9개 넓이인 6만 m² 규모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자작나무는 없었다. 소나무 숲이었다. 해충 피해로 소나무들이 벌채됐고 7년에 걸쳐 약 70만 그루의 자작나무가 새로 심어졌다.

자작나무 숲은 사계절 모두 아름답다. 특히 겨울에는 하얀색 자작나무와 하얀색 눈이 어울리며 동화 속 분위기를 연출한다. 자작나무는 순우리말이다. 기름기 풍부한 자작나무는 타면서 ‘자작자작’ 소리를 낸다고 한다. 자작나무 숲에서 눈 쌓인 길을 ‘자박자박’ 걸으면 자박자박 소리 대신 자작자작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하얀색의 자작나무는 태생적으로 눈과 잘 어울린다. 자작나무가 하얀색인 것은 이유가 있다. 원래 자작나무는 1년 중 대부분을 눈 쌓인 추운 지역에서 자란다. 햇빛은 물론이고 눈에서 반사되는 열까지 모두 받는다. 화상을 막고 빛을 반사하기 위해 나무껍질이 하얗게 발달했다. 자작나무 숲에 들어서면 나무만 보지 말고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자. 햇빛이 쏟아질 때 20∼30m까지 하늘로 치솟은 자작나무의 윗부분이 빛을 반사하면서 빛의 물결을 만든다.

자작나무 숲을 보기 위해서는 약 3km의 오르막길을 40분 정도 걸어야 한다. 겨울에는 오전 9시에 문을 열어 오후 2시부터는 출입이 통제된다. 오전에 입장해야 여유 있게 자작나무 숲을 둘러볼 수 있다. 눈이 쌓여 그대로 얼어붙은 길이 군데군데 있어 미리 아이젠을 준비하면 좋다.

해발 1330m에서 만나는 겨울왕국 숲

함백산 만항재에서는 주차장에서 5분만 걸어도 멋진 겨울숲을 만끽할 수 있다. 높은 지대에 있는 만큼 공기도 그 어느 곳보다 상쾌하다.

강원 정선에서 영월로 넘어가는 고갯길인 만항재는 참 고마운 존재다. 만항재의 해발 고도는 1330m로 우리나라에서 자동차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갯길이다. 국내의 웬만한 산보다 높다. 만항재에서는 남쪽으로는 영월의 상동, 북으로는 정선의 고한과 사북. 험준한 산악이 바다의 파도처럼 대차게 밀려오는 ‘산의 바다’가 발아래 펼쳐진다. 이곳엔 사시사철 새 옷을 갈아입는 300여 종의 희귀 야생화들이 자란다. 봄·여름·가을에는 아름다운 풀꽃의 향연이 펼쳐진다. 겨울에는 눈이 풀꽃을 대신한다. 한번 눈이 쌓이면 봄이 올 때까지 녹지 않고 하얀 자태를 드러낸다. 해발 1330m의 겨울왕국이 펼쳐진다.

자동차로 편하게 올라올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갈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정말 이렇게 쉽고 편하게 아름다운 풍경을 봐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자동차에서 내리면 입이 딱 벌어질 만한 설경이 맞아준다.

하얀 눈밭 위 빼곡하게 들어선 눈꽃 핀 낙엽송. 자꾸만 걷고 싶어지게 만드는 풍경이다. 만항재는 ‘야생화 공원’ ‘산상의 화원’ ‘하늘숲 정원’ ‘바람길 정원’ 등으로 나뉘어 있다. 고갯길 정상의 휴게소에서 커피나 차를 뽑아들고 잠시 세상일을 잊고 풍경을 바라보면 좋다. 하늘과 더없이 가까운 덕분에 맑은 공기가 폐로 들어가는 느낌이 상쾌하다. 특히 아침에 낙엽송 가지에 서리가 얼어붙으면서 만들어지는 상고대 풍경이 압권이다.

나무 덱 따라 걷는 북유럽풍 숲길

청태산 자연휴양림의 아기자기한 조형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강원 횡성의 청태산 자연휴양림은 기존의 숲에 추가로 나무를 심어 조성했다. 나무의 대부분이 잣나무이다. 이 외에도 소나무 산뽕나무 단풍나무 신갈나무 고로쇠나무 물푸레나무 들메나무 느릅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이 잣나무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곳에는 6개의 코스가 있다. 이 중 숲을 찬찬히 살펴보며 크게 힘들이지 않고 둘러보기에는 휴양림 탐방 코스가 좋다. 약 800m 길이의 나무 덱(deck)이 지그재그로 숲속 사이에 설치돼 있다. 나무 덱을 따라 올라가면 된다. 나무 덱에 쌓인 눈을 밟으면 기분 좋은 ‘오도독 오도독’ 소리가 난다. 그 소리에 놀란 듯 잣나무 가지 위에 쌓여 있던 눈들이 머리 위에서 휘날린다. 나무 사이로 맑은 햇살이 찰랑거리면 더없이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나무 덱 길은 경사가 완만해 누구나 쉽게 숲을 접할 수 있다. 길이 꺾이는 지점마다 볼거리와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가 있어 시간을 들여 숲을 둘러보기에도 좋다. 숲속을 걸으면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느낌이 든다. 숲 한쪽에는 시냇물이 흐른다. 겉은 얼어 있지만 안에서는 물이 여전히 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다. 얼음이 소리를 증폭시켜 숲에 졸졸 소리가 울려 퍼진다. 꼭 북유럽의 어느 한적한 숲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청태산 자연휴양림에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오전 10시, 오후 2시에는 숲해설가가 숲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 목걸이, 열쇠고리, 미니장승 등 목공예 체험도 할 수 있다. 가격은 1500원에서 1만2000원 정도다. 눈썰매를 가지고 가서 탈 수도 있다.


○ 여행정보

팁+ △자작나무 숲에 갈 땐 두꺼운 옷을 입기보다는 얇은 옷을 겹쳐 있는 것이 좋다. 오르막길을 걷다 보면 땀이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청태산 자연휴양림은 입장료(성인 1000원) 또는 주차장 이용료(중형 3000원)를 받는다. △눈이 내린 뒤에는 만항재를 가기 전에 정선군청 등에 제설작업과 통행 여부를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감성+ △음악: 가시나무(조성모) 여리면서도 살짝 떨리는 조성모의 목소리는 겨울과 더없이 잘 어울린다. △영화: 러브레터(이와이 슌지 감독·1995년) 눈 덮인 숲을 볼 때면 꼭 생각나는 영화. 겨울 숲에서 “잘 지내나요?”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여행지 지수(★ 5개 만점)
△겨울의 진수 만끽하기 ★★★★★
△연인과 손잡고 눈 덮인 길 걷기 ★★★★★
△겨울에 어울리는 사진 찍기 ★★★★★
△폐 깊숙이 맑은 공기 마시기 ★★★★

인제·정선·횡성=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