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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되는데 괴담이 대수냐”… 불안 파고드는 ‘검은 유튜버들’

입력 | 2020-02-01 03:00:00

‘사람 픽 쓰러져’ ‘군인이 끌고가’
자극적 조작으로 조회수 올리기… ‘조회 1건당 1원’ 광고료 노려
괴담 확산과정, 전염병과 닮아
전문가 “공신력 있는 기관이 정확한 정보 신속히 제공해야”




“이제부터 한국 언론에는 나오지 않는 영상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유튜브에서 영상을 틀자 한마디 설명과 함께 화면엔 한 중국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데 이 중국인은 난데없이 픽 하고 길거리에서 쓰러진다. “(환자가) 갑자기 쓰러지는 건 우한 폐렴의 큰 특징입니다.” 지난달 23일 한 유튜버가 ‘충격적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실제 상황’이란 제목으로 자신의 채널에 올린 동영상 한 대목이다. 이 영상엔 이날 하루 동안에도 ‘정부가 감추는 진실을 알려줘 고맙다’ 등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렸다.

이 영상은 ‘가짜’다. 우한 폐렴으로 나타나는 증상과는 거리가 멀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확인되지 않은 자극적인 조작으로 조회 수를 높이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했다. 요즘 우한 폐렴과 관련된 ‘괴담(怪談)’이 유튜브를 중심으로 소셜미디어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돈벌이가 되는 소셜미디어가 늘면서 민감한 사안이 불거질 때마다 말도 안 되는 주장들이 마치 사실처럼 포장돼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 당신의 불안을 파고드는 ‘괴담 튜브’


최근 “미국 연구진이 이미 수개월 전에 우한 폐렴 사망자를 6500만 명으로 예측했다”는 루머가 퍼진 게 대표적이다. 발단은 에릭 토너 미국 존스홉킨스대 박사팀이 지난해 10월 내놓은 연구 결과였다. 당초 토너 박사의 연구는 감염병의 사회·경제적인 파장과 산업계의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만약 전염병이 창궐한다면’이란 가정 아래 돌린 예측 시뮬레이션 결과였을 뿐이다. 그는 ‘캡스’라는 가상의 신종 바이러스가 브라질에서 창궐했다고 쳤을 때 치사율이 10%라고 가정한다면 세계적으로 6500만 명이 목숨을 잃는다는 상황을 설정했다. 우한 폐렴은 중국에서 발생한 데다 치사율이 2% 수준이므로 이 연구가 가정한 바이러스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런데 지난달 20일 국내에서 첫 우한 폐렴 확진 환자가 나온 직후 토너 박사의 연구 결과는 허무맹랑한 괴담으로 변질됐다. 유튜브 등에선 토너 박사의 연구 가운데 ‘사망자 6500만 명’만 부각시킨 동영상이 수십 건씩 올라왔다. 이는 소셜미디어를 타고 해외로도 퍼지며 마치 우한 폐렴의 결과를 예고한 ‘계시록’처럼 대접받았다. 결국 토너 박사 연구팀은 최근 시뮬레이션 결과를 홈페이지에서 삭제해 버렸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우한 폐렴은 아직 알려진 게 많지 않다 보니 충격적인 영상을 사실로 믿는 이들이 많았다”며 “바로 이런 점을 파고든 괴담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 “쓸모없는 괴담? 영상 1편으로 수백만 원씩 챙겨”


문제는 소셜미디어에서 영상이나 정보를 생성하고 소비하는 풍조 자체다. 여기선 진실이냐 아니냐가 중요하지 않다. 특히 이 바탕엔 ‘자극은 돈이 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내용의 진위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조회 수만이 수익을 올리는 기준이 된다. 업계에 따르면 영상이 시작되기 전에만 광고를 노출하는 동영상은 조회 수 1건당 약 1원의 수익이 유튜버에게 돌아간다. 만약 중간광고와 배너광고까지 추가해 3건의 광고가 달린 동영상은 수익이 2, 3배나 된다.

이 추정치가 맞는다면 26일 유튜브에 등장한 ‘중국 정부에서 막고 있는 소문들’이란 동영상이 벌어들인 수익도 역계산해볼 수 있다. 구독자가 50만 명이 넘는 채널을 운영하는 이 유튜버는 영상에서 “(중국 정부가) 길에 쓰러진 사람을 데려가고 있다. 의심 환자의 도주를 막기 위해 군대까지 투입했다”고 주장했다. 총 3개의 광고가 달린 이 영상은 30일 기준 290만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세금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 한 편으로 580만∼870만 원의 수익을 거뒀다는 뜻이다.

○ 투명·신속한 정보 제공이 괴담 이길 ‘백신’


아이러니하게도 유튜브에서 괴담이 퍼져 나가는 과정은 전염병 확산과 무척 닮았다. △전염병도 발원지가 있듯 괴담도 하나의 동영상에서 삽시간에 번진다는 점 △확산 과정에서 변종이 등장하는 바이러스처럼 괴담도 점점 왜곡 과장되는 점 △‘진짜 뉴스’의 외양을 교묘하게 뒤집어쓴 채 숙주의 ‘면역 체계’를 교란시킨다는 점 등이 그렇다.

전문가들은 괴담의 확산을 막을 최선의 예방책은 정부 등 공신력 있는 기관이 정확한 정보를 최대한 신속하고 투명하게 제공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유행 초기, 정부는 확진 환자들이 방문했던 병원 이름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아 불신을 증폭시켰다. 결국 시민들은 자력으로 병원명을 찾아내 온라인에 공유했고, 이 과정에서 확진 환자가 간 적도 없는 엉뚱한 병원이 ‘메르스 병원’으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괴담은 그 자체로도 자생력이 있지만 유튜브의 수익 창출 구조가 무시무시한 날개를 달아줬다”라며 “정부는 가능한 한 빠른 시간 안에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루머가 파고들 여지를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조건희 becom@donga.com·전채은·신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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