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1운동 임정 100년, 2020 동아일보 창간 100년] “학교에 300명 가두고 불태워” 신한촌 무자비한 인명 살상 노인동맹단 간부들 체포-피신 우수리스크서도 총살 등 탄압
1920년 ‘4월 참변’을 일으킨 연해주 주둔 일본군들. 수많은 한인 독립운동가가 비참하게 학살당했다. 우수리스크 고려인문화센터에서 촬영한 사진.
러시아 지역 독립운동사를 연구해 온 박환 수원대 교수는 “일본 기록에는 일본군이 한인 60명을 체포했다고 하는데, ‘소련한족사’(김승화 저)에 따르면 당시 300명이 넘는 한인들이 체포됐고, 일본군은 그들을 학교에 가둔 채 건물을 불태워 죽였다”고 밝혔다.
4월 참변은 한 달 전인 3월 러시아 적군(볼셰비키 혁명군)이 일본 수비대와 일본인 거류지를 공격한 데 대한 보복적 성격이 강했다. 한인들이 대상에 포함된 것은 일본에 적대적인 러시아 적군에게 우호적이었기 때문이다. 또 한인 독립운동가들이 만세운동 이후 러시아 군대로부터 신형 무기를 구입해 무장한 뒤 국내로 진출하려는 항일 움직임도 보였기 때문이다.
우수리스크에서도 일본군은 70여 명의 한인 독립운동가를 체포했다. 이때 최재형을 비롯해 김이직, 엄주필, 황경섭 등이 일본군에 끌려가 총살당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 혁명 정부기관이 불태워지고, 많은 러시아인들이 학살당했다. 우수리스크 교외엔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4월 참변 추모비가 서 있다. 당시 희생된 240명의 러시아인과 한인들을 추도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매년 4월 5일 러시아 지방정부가 추모비와 ‘영원의 불꽃 추모광장’에서 추모제를 지낸다. 2006년에는 한국과 러시아가 공동 추모제를 지내기도 했다.
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안영배 논설위원 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