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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는 로봇, 노령화 업고 매년 47% 성장

입력 | 2020-02-01 14:15:00

노동력 감소한 곳에서 폭발적 성장
공장·건설·물류 현장은 물론 스키장에까지 등장






현대·기아자동차는 조끼 형태로 상향 작업을 지원하는 로봇과 작업자의 앉은 자세를 유지하기 위한 무릎관절 보조 로봇을 개발했다. [사진 제공 · 현대자동차그룹]



가끔씩 우리는 영화에서처럼 아이언맨 슈트를 입고 하늘을 날거나 강력한 파워를 이용해 악인으로부터 지구를 구하는 상상을 하곤 한다. 아이언맨 슈트를 걸침으로써 애초에 한계가 지어진 신체능력을 끌어올려 연인이나 가족, 친구들 앞에서 히어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기분 좋은 일이다. 

현대자동차 직원들이 자사 로보틱스팀이 개발한 착용 로봇을 입은 채 작업하고 있다. [사진 제공 · 현대자동차그룹]



‘입는다’는 행위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보통 사람 이상의 힘을 발휘하도록 해주는 도구나 장비들이 출시되고 있다. 보통 사람보다 뛰어난 이들을 지칭하는 슈퍼휴먼은 강화된 신체능력을 이용해 과거에는 할 수 없었거나 즐길 수 없었던 일들을 해내게 될 것이다. 신체적·지적 능력이 강화된 슈퍼휴먼의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으며, 그 중심에 아이언맨 슈트 같은 ‘입는 로봇’이 자리하고 있다. 

아이언맨 슈트는 입고 착용한다는 의미에서 웨어러블 로봇 또는 웨어러블 슈트로 불리고, 골격 위치에 따라 구분되는 내골격(Endoskeleton·엔도스켈레톤)의 대응 개념으로 외골격(Exoskeleton·엑소스켈레톤) 로봇 또는 간단하게 로봇 슈트나 엑소 로봇으로도 불리지만, 모두 다 동일한 의미로 통용된다. 중요한 것은 웨어러블 로봇은 스스로 지능을 가지고 동작하는 로봇 또는 슈트가 아니라, 사람이 특정한 행위나 신호를 통해 움직이도록 만드는 객체적인 도구이자 수단이라는 점이다. 

사람이 움직이려고 하는 의도를 센서(sensor)가 감지해 고속 계산이 가능한 컨트롤러에 전달하고, 그 전달된 정보를 활용해 관절부의 작동장치(Actuator·액추에이터)가 구동되는 원리다. 물론 작동장치가 의도대로 구동되기까지 센서 기술, 배터리 전원 기술, 관절의 내구성, 지능형 컨트롤러가 필요하다. 좀 더 나아가면 뇌세포, 신경세포와 연결된 신경망 기술까지 망라하기에 상당히 복잡한 시스템이며, 기술적 난도 또한 높다고 할 수 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제품 박람회 CES 2020에서 삼성전자 전시관을 방문한 관람객이 웨어러블 보행 보조 로봇 ‘젬스(GEMS)’를 체험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삼성전자]



○ 현장 속으로 진입하는 웨어러블 로봇

1월 10일 막을 내린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 2020에서도 웨어러블 로봇은 관람객들의 주목을 끈 바 있다. 삼성전자가 선보인 젬스(GEMS)는 근력이 부족하거나 거동이 불편한 노약자와 환자의 보행을 보조하는 웨어러블 로봇으로, 허리와 종아리에 착용하면 걷는 자세를 교정해주고 보행 시 20%가량 힘을 덜 쓰게 해 재활치료에 특히 도움이 된다. 

그중 눈길을 끈 것은 IT(정보기술), 자동차 회사가 아닌 항공사가 공개한 웨어러블 로봇이었다. 델타항공이 공개한 가디언XO(Guardian XO)는 공항 물류 작업자가 23kg이 넘는 무거운 여행가방도 손쉽게 들고 내릴 수 있게 해준다. 델타항공은 미국 스타트업 사코스 로보틱스가 개발한 이 웨어러블 로봇을 올해 1분기 물류업무에 시범 도입할 예정이다. 

우리가 실감하지 못하는 사이 웨어러블 로봇은 국방, 소방·재난구조 같은 안전 현장, 산업 현장, 재활치료,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제로 적용되고 있다. 

처음 웨어러블 로봇은 경제성이 없더라도 예산 사용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국방 분야에서 개발되기 시작했다. 1965년 미 해군은 고중량의 포탄 운반을 쉽게 하려는 목적으로 연구에 돌입했으며, 현재 미국을 위시한 각국은 자국 군대의 전투력을 극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한 경쟁에 나서고 있다. 미국 방산업체 록히드마틴은 90kg 군장을 멘 채로 최고 시속 16km까지 달리도록 지원하는 헐크(HULC)를 개발해 실전 배치에 나선 상태다. 스타크래프트 게임 속 테란 형상을 하고,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의 톰 크루즈가 착용한 형태의 군사용 웨어러블 로봇이 등장할 날도 머지않았다. 

현대·기아자동차의 웨어러블 로봇. [사진 제공 · 현대자동차그룹]



또한 재난구조 현장에 적용하는 사례도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 ㈜FRT는 하이퍼 R1이라는 소방 전용 로봇을 개발했다. 소방관들이 화재 현장에서 웨어러블 로봇을 입고 지구력과 근력을 보강해 산소통을 부담 없이 사용하거나 장시간 구조 활동을 벌이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산업현장에서는 생산라인 상향 작업 비중이 큰 자동차공장을 중심으로 웨어러블 로봇이 속속 도입되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조끼 형태로 상향 작업을 지원하는 벡스(VEX)와 작업자의 앉은 자세를 유지하기 위한 무릎관절 보조 로봇인 CEX를 개발했다. CEX의 경우 1.6kg 무게에도 불구하고 150kg의 체중까지 지탱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포드자동차는 이미 전 세계 15개 공장에 상체에 착용하는 엑소베스트(EksoVest)를 배치해 하루 4600번에 걸쳐 상체를 젖혀야 하는 작업자의 부담을 경감해주고 있다. 자동차공장 외에도 물류, 중공업, 건설 등의 산업현장에서 이용 사례가 늘어날 전망이다. 

의료와 재활은 가장 활발하게 개발이 진행되는 분야다. 이스라엘 기업 리워크(Rewalk)는 하체 장애 환자의 보행을 지원하는 웨어러블 로봇을 개발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 때 하반신이 마비된 한 영국 여성은 리워크의 웨어러블 로봇을 착용하고 17일에 걸쳐 마라톤을 완주해 감동을 준 바 있다. 한국 ㈜엔젤로보틱스도 장애 환자가 보행할 수 있도록 돕는 엔젤슈트라는 재활 로봇을 개발한 바 있다. 

여가시간이 늘어나고 레포츠를 즐기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이를 위한 로봇도 등장했다. 스키나 스노보드를 탈 때 근력을 증강시키고 피로감을 최소화해 더 오래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미국 롬 로보틱스(Roam Robotics)는 소프트한 소재로 스키용 로봇을 개발해 북미 스키장에서 렌털 방식으로 이미 상용화한 상태다.

각종 로봇을 조작하는 근로자. [GettyImages]



가격 대중화 속도가 관건

웨어러블 로봇 시장은 2016년 9600만 달러(약 1130억8800만 원)에서 2026년 46억5000만 달러(약 5조4777억 원)까지 연평균 47.4%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역설적이게도 65세 이상 노령인구의 증가와 우리나라, 일본을 비롯한 몇몇 국가의 인구 감소에 따른 노동력 부족 추세가 웨어러블 로봇 시장 성장의 트리거(trigger)로 작용하고 있다. 노령인구의 신체활동을 지원하는 솔루션으로 웨어러블 로봇이 각광받는 것이다. 건설노동자 수가 2014년 343만 명에서 2025년 318만 명(일본건설업연합회 자료)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일본의 경우, 그 대안으로 웨어러블 로봇을 검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일본 건설사 오바야시구미(大林組)는 건설현장의 노동력 확보 방안으로 일본 사이버다인(Cyberdyne)에서 개발한 HAL 로봇을 도입할 계획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이 늘어나고 있으나 현재 웨어러블 로봇은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비싸고 사용감이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영국의 가격비교사이트 머니슈퍼마켓이 마블, 위키피디아 등의 자료를 참고해 계산한 결과, 아이언맨 슈트 한 벌 가격은 1381억 원에 달한다고 하니 입어볼 엄두조차 안 난다. 앞서 예시한 웨어러블 로봇들도 리워크 6만9500달러(약 8190만 원), 사이버다인 200만 엔(약 2161만 원) 등 일반인이 접근하기엔 가격이 높다. 

또한 미국 VOA의 탐사보도에 따르면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제공하는 웨어러블 로봇인 로보틱 테크 베스트(Robotic Tech Vest)를 입을 경우 무게와 착용에 따른 스트레스로 작업자들의 부상이 늘었다고 한다. 높은 가격과 더불어 안정성, 착용 편의성 등이 범용 확대의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환자의 자립을 도와주는 의료용 웨어러블 로봇. [GettyImages]



최근 일본 벤처기업 이노피스(Innophys Co.)는 10만 엔 대(약 108만 원)의 작업보조 슈트인 ‘머슬 슈트(Muscle Suit) Every’를 출시했는데, 무게가 가볍고 상대적으로 가격도 저렴해 판매가 늘어나고 있다. 머슬 슈트는 무거운 물건을 올리고 내리는 작업이나 상체를 구부린 자세로 하는 작업을 보조하는 슈트로, 백팩처럼 등에 메고 벨트를 조여 사용한다. 

이처럼 가볍고 착용하기 쉬우며 소프트한 소재를 적용한 웨어러블 로봇과 간편한 구조로 제작돼 원가를 낮춘 재활치료 로봇에 대한 수요가 점차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활동성을 높이면서도 압박감이 없어 피로하지 않고, 편안하면서도 넉넉한 느낌의 로봇이 필요한 것이다. 착용에 부담이 없고, 실루엣이 살아 있어 패션 아이템으로도 손색없으며, 언제 어디서나 구매 가능할 경우 1인 1슈트가 핫 아이템으로 트렌드를 주도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테다. 

웨어러블 로봇은 고령자, 장애인에게는 새로운 삶의 활력과 희망을 주고, 산업현장에서는 노동의 질을 개선해 생산성을 증진하며, 인간의 감각적 즐거움을 배가하는 데 제 역할을 할 것이다. 인간 능력을 보충하고 지원하는 도구이자 수단으로써 가장 인간적인 기술 진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PDA 같은 유사한 제품이 쏟아져 나오다 아이폰 출시와 함께 스마트폰 세상이 개화하는 것을 목격한 바 있다. 최근 수년간 다양한 부문에서 웨어러블 로봇에 대한 각종 아이디어와 특허 기술들이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2020년에는 사용성이 향상되고 가격 장벽까지 낮아진 웨어러블 로봇의 등장과 함께 본격적인 태동기가 시작될 전망이다.

박진영 한국트렌드연구소 빅퓨처 연구위원 ㈜이오다인컴퍼니 대표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24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