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혜 작가·칼럼니스트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중
대학생 때 유럽여행을 간 적이 있다. 유럽은 처음이었는데 걱정과 다르게 무탈하게 잘 다녀왔다. 다만 생전 겪어보지 못했던 인종차별 경험은 내 나름대로 충격이었다. 물론 주변 사례를 들어보면 내 경우는 심한 축에도 들지 못하는 것 같기는 하나, 어쨌든 밤거리를 걷다 모르는 사람에게 욕설을 듣는 것이 흔히 겪는 일은 아니니 말이다. 특히나 “망할 중국인 썩 꺼져!” 같은 말들. 나는 그가 왜 홀로 조용히 걷던 나를 상대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른다. 그날따라 기분이 안 좋았을지 모르고, 그에게 중국을 싫어할 만한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나 역시 그 말을 듣고 딱히 상처받을 이유도 없었다. 나는 중국인도 아니고, 모든 유럽인이 그와 같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다만 한국이 아닌 곳에서라면 나의 개별성은 언제든 지워지고 ‘중국인’ 혹은 ‘아시아인’으로 치환될 수 있다는 것, 단지 존재 자체만으로 누군가에게는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적잖이 충격적이고 아픈 경험이었다.
한승혜 작가·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