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진균 정치부 차장
정치권이 죽기 살기로 싸웠던 ‘패스트트랙 전쟁’이 지난달 13일 유치원 3법까지 통과되면서 민주당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총선을 93일 앞둔 시점이었다. 집권세력이 철저히 힘으로 밀어붙인 결과다. 협상이나 정치 모두 상대가 있는 싸움이다. 상대 진영이 느낄 상실감과 상처를 생각할 때, 고개를 숙이는 척이라도 하는 것이 상식이고 전략이다.
하지만 보여주는 모습은 반대다. 다음 날인 지난달 14일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향해 ‘마음의 빚’을 언급했다. 이후 청와대는 “조 전 장관 수사 과정에서 인권 침해가 발생했으니 조사해 달라”는 국민청원을 국가인권위원회에 보냈다고 밝혔고, 지난달 20일 조 전 장관의 정책보좌관을 지낸 김미경 변호사는 대통령균형인사비서관에 임명됐다.
“우리가 이른바 ‘싸가지 없는 진보’를 자초한 것이 아닌지 겸허한 반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문 대통령의 책 ‘1219 끝이 시작이다’에 나오는 그 유명한 구절이다. 2012년 대선 패배 이후의 이 같은 반성은 이제 ‘흘러간 과거’다. 도대체 고개를 숙일 줄 모른다. 심지어 잘못을 해도 반성이라곤 찾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의 실책을 지적하면 “그럼 이명박근혜 시절로 돌아가자는 거냐?”고 역정부터 낸다. 박정희 정권의 독재를 비판했을 때 “그럼 김일성 밑에서 공산주의 하자는 거냐?”며 대뜸 입부터 틀어막았던 군부세력에 대해, 그들은 뭐라고 했었던가.
야권의 분열 속에 친문 진영은 40% 안팎의 지지층만 다지면 1당이 된다고 믿는 듯하다. 여의도 속설 중 하나는 ‘좋은 놈 밀어주자는 것보다 미운 놈 응징하자고 해야 표가 더 잘 뭉친다’는 것이다. 이 같은 표심을 선거에 능한 친문 진영이 읽지 못할 리 없다. 그래서 극단적 지지층만 바라보고, 남 탓을 하고, 편을 가르는 것일 게다. 그럼 문재인 정부는 성공하나. “오직 승리밖에 모르는 자들이 과연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을까.” 설 연휴 때 본 중국 드라마 ‘사마의2: 최후의 승자’에 나오는 대사다.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