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통치자의 최대 과제는 언제나 외화벌이다. 북한은 40여 개국에 있는 자국 대사관을 외화벌이 사업에 활용하는 불법을 저질렀다. 독일 베를린 대사관의 일부 시설은 유스호스텔로 불법 임대사업을 했다. 노동자 10만여 명을 중동과 중국, 러시아 등에 파견한 것도 김정은의 통치자금을 확보하고 외화를 벌기 위한 목적이었다. 2017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핵실험으로 유엔 안보리의 강력한 제재를 받은 뒤엔 북한의 외화벌이는 ‘미션 임파서블’이 됐다.
▷미국 달러화가 어떤 나라의 고유 통화(通貨)를 대체하는 것을 달러라이제이션(dollarization)이라 한다. 돈의 값어치가 떨어지거나 고(高)인플레이션 지속으로 달러 수요가 급증하면 그 나라의 화폐보다 더 비중 있게 사용된다. 한국은행은 최근 북한의 달러라이제이션과 관련된 보고서에서 북한이 2014년 기준으로 30억1000만∼66억3000만 달러(약 3조2000억∼7조 원)를 보유했지만 올해 말엔 모두 소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엔 제재 이후 매년 20억 달러씩 줄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 보유액은 국가 경제의 안정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개방성이 낮은 북한이라지만 외화 부족은 대외 구매력 상실로 이어진다. 환율과 물가가 동시에 상승할 때가 북한 내 달러 고갈의 신호라고 하는데, 김정은의 통치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 체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도발을 할지 모른다는 점에서 한반도 위기지수가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북한이 대북제재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비핵화 협상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자본주의 체제를 비난해온 북한이 달러 고갈로 발을 구르는 현실이 너무도 역설적이다.
김영식 논설위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