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버거 세트 하나 주세요.”
“저기 손님.”
“여기서 500원 추가하시면 ‘사이즈 업’이 가능하십니다.”
“사이즈 업이요?”
고민하던 손님의 “음… 네”라는 대답과 동시에 배경에 깔리던 우울한 멜로디는 빠른 비트로 바뀐다. 500원 더 내고 ‘감자튀김’을 ‘프렌치프라이’로 업그레이드하라며 상술을 펼치는 직원과, 이에 말리지 않으려는 손님 사이의 ‘대사 핑퐁’에 맞춰 멈춤과 재생을 반복하는 비트. 박자에 따라 고개를 끄덕이다보면 어느새 3분 41초가 지나 있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성 대표는 “평생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이 뭘까”를 고민하던 중 수학공식이 아닌 콘텐츠에서 길을 찾았다. 공연 기획사 ‘인더비(In the B)’를 차려 실험적인 콘텐츠를 제작하던 성 대표는 2014년 말 72초TV를 만들었다. 프랑스 숏폼 드라마 ‘bref’에서 영감을 얻어 1~2분짜리 영상을 찍은 게 시작이었다. “그 땐 ‘숏폼’이라는 단어도 없었어요. 짧은 디지털 콘텐츠가 뜨겠다 싶어 무작정 찍기 시작했죠.”
영상을 올리자 국내외 콘텐츠 업체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하지만 수익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콘텐츠를 플랫폼에 유통하거나, 콘텐츠에 광고를 붙여야 했지만 둘 다 어려웠다. 3분짜리 영상에 15초 광고가 붙을 리 없었다. 콘텐츠 자체가 돈이 되기도 힘들었다. 지난 1년은 콘텐츠와 수익모델 간 연결고리를 찾는 시간이었다. “살아남으려면 대체 불가능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해요.”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아이 참, 김 대리. 내가 몇 번을 말했어? 시키는 일, 다 할 거야? 일의 우선순위가 있어야지.’ ‘대체 불가능한 것’을 설명하던 성 대표가 들려줄 게 있다며 휴대폰에서 파일 하나를 재생하자 노래(?)가 흘러나왔다. “음악 같죠? 드라마에요. 음원으로 들어도 재밌을만한 숏폼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어요.” 30대 회사원의 일상을 소재로 한 대사 내내 비트가 깔려 랩처럼 들렸다. 숏폼 콘텐츠가 전무하던 2014년 72초 드라마를 만들었던 성 대표는 또 한 번 세상에 없는 콘텐츠를 만들고 있었다.
72초TV만의 색깔을 구축해온 성과가 서서히 나오고 있다. 72초TV는 세계적인 콘텐츠 기업의 지적재산권(IP)을 활용해 숏폼 시트콤을 제작하는 계약 체결을 앞두고 있다. 각색, 연출, 편집 등 제작 전 과정을 72초TV가 맡는다. “이곳과 협업한다는 사실만으로 회사 이름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기회에요.” 이르면 올해 말 72초TV의 이름을 단 숏폼 시트콤이 세계 시장에 나온다. 영화, 드라마 등으로 기업을 광고하는 ‘브랜디드(Branded) 콘텐츠’ 제작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국내 한 기업과 드라마 형식의 브랜디드 콘텐츠를 제작해 연간 방영하는 계약도 맺었다. 성 대표는 향후 브랜디드 콘텐츠가 광고 시장을 대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때는 72초다웠는데 지금은 아닌 것.’ 성 대표가 가장 경계하는 점이다. “모든 콘텐츠는 식상해지기 마련이에요. 끊임없이 콘텐츠와 포맷을 바꿔가는 것. 그게 72초TV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해요.”
김재희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