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경북 영천 은해사 법요식에서 합장을 하지 않았던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왼쪽 사진)는 ‘조계종 육포 사건’ 직후인 지난달 31일 경기 하남시 상월선원에선 합장반배를 했다. 뉴시스
최우열 정치부 차장
한국당 공천의 흑역사를 아는 사람들은 황 대표의 합장을 두고 “육포 사건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는 평가를 한다. 최근의 한국당 공천에서 ‘관료형’과 ‘정치인형’ 인사가 대립했다는 관점에서 보면 의미 있는 얘기다. 갈등이 잘 조정돼 대외적으로 부드러운 공천이 이뤄지면 승리했고, 갈등이 대전(大戰)으로 불거지면 패배했다. 막스 베버는 “분노와 편견 없이 직무를 수행하는 관료”와 “당파성, 투쟁, 선동을 본령으로 하는 정치인”을 근본적으로 다르게 봤다. “지고한 품성의 관료야말로 정치인으로서 부적절하고 무책임하다”고까지 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은 검사 출신의 정홍원 전 국무총리는 관료형 인사에 가깝다. 정 위원장이 ‘친이(친이명박)계 핵심 이재오 의원 포함 21명 공천안’을 당 비상대책위원회에 설명하자, 김종인 비대위원이 면전에서 “이 의원은 18대 총선 친박(친박근혜) 학살 공천 책임자”라고 반발했다. 화가 난 정 위원장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 비대위 의결 없이 곧바로 명단을 발표해 버렸다. ‘관료’ 정홍원은 안정에, ‘정치인’ 김종인은 충격요법에 주안점을 둔 것인데 결국 이 갈등은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공관위의 재의결을 수용하면서 확전되지 않고 마무리됐다.
21대 총선에서 공천의 키를 쥔 5선 의원 출신 김형오 공관위원장도 이 분류법으로는 전형적인 정치인이다. 김 위원장은 2007년 한나라당 원내대표 시절 과반 여당 열린우리당이 개혁 입법으로 자랑하던 사학법을 시행 1년 만에 야당 의견을 반영한 재개정안으로 수정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숙원사업 로스쿨법도 같은 날 본회의에 통과시켜 주면서 ‘바꿔먹기’라는 비판도 받았다. 2009년 미디어법 처리 당시 국회의장이던 김 위원장은 청와대 요구와 달리 야당 의견을 수용한 중재안을 마련하면서 상정을 지체했다. 여당 일각에선 “의장이 탄핵 대상”이라는 말까지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타협론으로 미디어법을 처리할 수 있었다.
김 위원장이 정치인이라면 황교안 대표는 매뉴얼을 중시하는 관료 출신. 황 대표는 김 위원장을 영입하면서 공천에 대한 전권을 주겠다고 했고 아직까지 종로 출마 여부를 미루는 이유 중 하나도 공관위 결정이 나지 않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런 황 대표가 최근 갑자기 “공관위의 잘못된 공천은 제재할 수 있다”고 결이 다른 얘기를 했다. 황 대표의 지지 기반(친박 및 대구경북)이 복당파 김세연 의원의 공관위원 선임과 김 위원장의 ‘대구경북 물갈이론’에 반발하는 와중에 나온 발언이라 예사롭지 않다. 지난주 의원총회에선 “힘들었던 지난 장외집회들에 수도권에서 두어 명 동원할 때 대구경북에선 매번 버스 행렬이 올라왔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누군가의 목줄을 끊어야 하는 공천 과정에서 갈등과 반발은 필연적이다. 김 위원장이 황 대표의 핵심 측근을 지목해 잘라내겠다고 할 수도 있고, 당사자들은 사생결단으로 저항할 수도 있다. 이것이 공천파동으로 확전될지, 성공하는 공천이 될지는 김 위원장을 당에 들인 황 대표의 조정 능력에 달려 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최우열 정치부 차장 dns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