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득 만화가 그림
권용득 만화가
해가 바뀌면서 머리를 잘랐다. 새해를 맞아 새로운 다짐을 하기 위해서 그랬던 건 아니다. 똑같은 대답을 반복하는 일이 지겨워서 그랬던 것도 아니다. 국물 요리 먹을 때마다 고개를 숙이면 흘러내린 머리가 국물에 자꾸 빠져서 그랬던 것도 아니다.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 이용할 때마다 힐끔 쳐다보는 눈길이 불편해서 그랬던 것도 아니다. 공중화장실 이용할 때마다 내 뒷모습에 흠칫 놀라는 사람들을 배려해서 그랬던 것도 아니다. 그날따라 시간이 남아돌았을 뿐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만나는 사람마다 왜 갑자기 머리를 잘랐냐며 궁금해했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그냥 자른 거임! 아무 까닭 없음!’
비할 바는 아니지만, 신체 변화로 나보다 훨씬 큰 관심을 받는 사람도 있다. 휴가 중 성전환 수술을 받은 육군 전차 조종수 변희수 하사 말이다. 물론 변 하사는 나처럼 아무 까닭 없이 그런 결정을 한 게 아니다. 주변에 말 못할 고민을 오래 품어왔을 테고, 그 선택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군은 변 하사의 ‘중요 신체기관 상실’을 심신장애에 해당된다며 군복무를 계속 하고 싶다는 변 하사를 강제 전역시켰다. 변 하사가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고 해도 직무 수행이 불가능한 건 아닐 텐데, 군의 결정은 이해하기 어렵다. 문득 ‘성전환도 내가 아무 까닭 없이 머리를 기르거나 자르듯이 쉬웠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전에 타인의 신체 변화에 왜들 이렇게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걸까.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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