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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어린이과학동아 별별과학백과]밭 갈고 거름주고… ‘땅 속의 만능일꾼’ 지렁이

입력 | 2020-02-05 03:00:00

흙 사이 헤집어 공기-물 순환시키고 똥은 비료로 쓰며 건강한 땅 만들어
기후변화에 영향 받는 지렁이 군집… 지하 생물 다양성 연구의 바로미터
전 세계 ‘지렁이 생태계’ 연구 활발




영국 임피리얼칼리지의 빅토리아 버턴 연구원이 ‘지렁이 관찰대’로 활동하는 어린이들에게 지렁이 탐사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지렁이 관찰대 제공

지난해 10월 25일 독일 통합생물다양성연구센터의 헬렌 필립스 연구원 팀은 전 세계에 어떤 지렁이가 얼마나 사는지 조사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어요. 지금까지 지렁이의 생태계에 대한 연구는 작은 지역 단위로 이뤄졌는데, 필립스 연구원 팀이 처음으로 전 세계 자료를 정리한 거예요.

필립스 연구원은 2016년부터 전 세계 지렁이 연구자들에게 공동 연구를 하자고 제의했어요. 그래서 이번 연구는 참여 과학자 수만 봐도 어마어마해요. 37개국 140명의 연구자가 57개국 6928곳의 땅을 조사한 결과지요.

연구원 팀은 조사 장소마다 몇 종의 지렁이가, 몇 마리나 살고 있는지, 또 몇 g의 지렁이가 살고 있는지 알아봤어요. 이 자료를 분석하면 지렁이 종 다양성이 높은지, 한 마리당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등을 추론할 수 있어요. 분석 결과 연구팀은 종 다양성이 가장 높은 지역이 온대지역이란 사실을 알아냈지요. 보통 지상 생물은 기온과 습도가 높은 열대와 아열대지역에서 종 다양성이 높은데, 지하에 사는 지렁이는 이와 다른 패턴을 보인 거예요. 열대지역으로 갈수록 지렁이의 종 다양성은 줄어들었지요.

연구팀은 지렁이의 다양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알아봤어요. 그 결과 연구팀은 종 다양성과 질량에는 강수량이, 개체 수에는 기온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아냈답니다. 토질이 가장 중요할 거란 예상과는 다른 결과였죠.

연구팀은 논문을 통해 “이번 연구 결과는 기후변화가 지렁이 군집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보여 준다”며 “지렁이 군집의 변화는 다른 생물에게 연쇄 효과를 미칠 수 있다”고 말했어요. 이어 “생물 다양성을 연구할 때 지상과는 다른 지하 생물 다양성 패턴도 꼭 연구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지요.

○ 지렁이는 어떻게 전 세계를 차지했을까?


호주 등에 서식하는 자이언트 지렁이. 플리커 캡처

지렁이가 기어가는 모습을 본 적 있나요? 느릿느릿 가는 모습을 보면 답답한 느낌이 들지요. 그런데 지렁이는 빠르지도 않고, 멀리 움직이기도 힘들지만 남극을 뺀 나머지 대륙을 모두 차지했어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2017년 미국 서던일리노이대 동물학부 프랭크 앤더슨 교수팀은 현존하는 지렁이 18종의 유전체를 비교해 지렁이의 진화 과정을 연구했어요. 그 결과 지구상에 지렁이가 나타난 건 약 2억900만 년 전으로 추정했지요.

또 같은 방식으로 지렁이의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 지렁이는 약 1억7800만∼1억8600만 년 전부터 크게 두 개의 부류로 나뉘었는데, 이는 각각 지금의 북반구 지렁이와 남반구 지렁이 유전체와 공통점을 가졌어요. 연구팀은 지렁이가 두 부류로 나뉜 건 당시 땅이 나뉘었기 때문이라고 봤어요. 지렁이가 두 부류로 나뉜 시기는 하나의 대륙이던 판게아가 약 1억8000만 년 전 남북으로 쪼개진 시기라는 거예요.

최훈근 지렁이농업연구소장은 “약 5억 년 전 지렁이 알 화석이 발견되며 그쯤 처음 등장했다는 주장도 있다”며 “지렁이는 사람이 살기 훨씬 전부터 지구에 살았다”고 설명했어요.

○ 다윈도 푹 빠진 지렁이, 시민과학자도 있다

토양 색깔에 따라 흙과 지렁이를 분류할 수 있는 자료. 지렁이 관찰대 제공

“이 낮은 수준의 유기체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다른 동물이 있을지 의심스럽다.”

이 말은 19세기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이 1881년 ‘지렁이의 작용에 의한 부식토의 형성’이란 책을 내면서 지렁이를 평가한 내용이에요. 그는 비글호를 타고 여행을 다녀온 뒤 집 근처 밭에서 지렁이를 키우며 40년 동안 지렁이를 연구했답니다.

다윈은 지렁이가 1년 동안 약 0.2∼0.5cm 깊이의 흙을 수직으로 섞으며, 이때 표면으로 올라오는 흙만 1ha(헥타르)를 기준으로 17∼40t에 달한다고 결론 냈어요. 지렁이의 똥이 농작물 비료로 작용한다는 사실도 밝혔답니다.

영국에는 지렁이로 과학 활동을 하는 시민들이 있어요. 시민 1850명이 자신이 사는 곳 주변에서 지렁이를 찾고 어떤 종인지, 몇 마리가 있는지 등을 조사하는 거죠. 이들은 스스로를 ‘지렁이 관찰대’라고 부릅니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영국 임피리얼칼리지의 빅토리아 버턴 연구원과 인터뷰를 했어요.

―어떻게 ‘지렁이 관찰대’를 시작하셨나요?


“저는 목초지나 경작지 등 땅의 용도에 따라 토양생물의 다양성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연구하고 있어요. 그런데 저 혼자 영국 전체에서 토양생물을 찾는 건 벅찬 일이었죠. 그래서 시민 과학자들의 도움을 받기로 했답니다.”

―왜 하필 지렁이인가요?


“지렁이는 건강한 토양을 위해 꼭 필요한 존재예요. 지렁이가 헤집고 다닌 흙 사이로 물과 공기가 들어가면서 식물이 더 잘 자라요. 그런데 사람들은 지렁이보단 조류나 포유류에게 관심이 더 많죠. 저는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고 싶었답니다.”

―그럼 시민 과학자들이 모은 자료는 어떻게 쓰이나요?


“시민 과학자들은 탐사 지역과 토양의 습도, 색깔, 질감, 그리고 지렁이의 색깔과 개체 수를 기록해요. 이 자료를 분석해 지렁이들이 토양 속 수분에 민감하단 사실을 알아냈어요. 또 유기질 비료를 쓴 곳엔 약 20% 더 많은 지렁이가 살고 있었지요. 곧 논문으로 정리된 시민참여과학의 결과를 볼 수 있을 거예요.”

신수빈 어린이과학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