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사이 헤집어 공기-물 순환시키고 똥은 비료로 쓰며 건강한 땅 만들어 기후변화에 영향 받는 지렁이 군집… 지하 생물 다양성 연구의 바로미터 전 세계 ‘지렁이 생태계’ 연구 활발
영국 임피리얼칼리지의 빅토리아 버턴 연구원이 ‘지렁이 관찰대’로 활동하는 어린이들에게 지렁이 탐사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지렁이 관찰대 제공
필립스 연구원은 2016년부터 전 세계 지렁이 연구자들에게 공동 연구를 하자고 제의했어요. 그래서 이번 연구는 참여 과학자 수만 봐도 어마어마해요. 37개국 140명의 연구자가 57개국 6928곳의 땅을 조사한 결과지요.
연구원 팀은 조사 장소마다 몇 종의 지렁이가, 몇 마리나 살고 있는지, 또 몇 g의 지렁이가 살고 있는지 알아봤어요. 이 자료를 분석하면 지렁이 종 다양성이 높은지, 한 마리당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등을 추론할 수 있어요. 분석 결과 연구팀은 종 다양성이 가장 높은 지역이 온대지역이란 사실을 알아냈지요. 보통 지상 생물은 기온과 습도가 높은 열대와 아열대지역에서 종 다양성이 높은데, 지하에 사는 지렁이는 이와 다른 패턴을 보인 거예요. 열대지역으로 갈수록 지렁이의 종 다양성은 줄어들었지요.
연구팀은 논문을 통해 “이번 연구 결과는 기후변화가 지렁이 군집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보여 준다”며 “지렁이 군집의 변화는 다른 생물에게 연쇄 효과를 미칠 수 있다”고 말했어요. 이어 “생물 다양성을 연구할 때 지상과는 다른 지하 생물 다양성 패턴도 꼭 연구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지요.
○ 지렁이는 어떻게 전 세계를 차지했을까?
호주 등에 서식하는 자이언트 지렁이. 플리커 캡처
2017년 미국 서던일리노이대 동물학부 프랭크 앤더슨 교수팀은 현존하는 지렁이 18종의 유전체를 비교해 지렁이의 진화 과정을 연구했어요. 그 결과 지구상에 지렁이가 나타난 건 약 2억900만 년 전으로 추정했지요.
또 같은 방식으로 지렁이의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 지렁이는 약 1억7800만∼1억8600만 년 전부터 크게 두 개의 부류로 나뉘었는데, 이는 각각 지금의 북반구 지렁이와 남반구 지렁이 유전체와 공통점을 가졌어요. 연구팀은 지렁이가 두 부류로 나뉜 건 당시 땅이 나뉘었기 때문이라고 봤어요. 지렁이가 두 부류로 나뉜 시기는 하나의 대륙이던 판게아가 약 1억8000만 년 전 남북으로 쪼개진 시기라는 거예요.
○ 다윈도 푹 빠진 지렁이, 시민과학자도 있다
토양 색깔에 따라 흙과 지렁이를 분류할 수 있는 자료. 지렁이 관찰대 제공
이 말은 19세기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이 1881년 ‘지렁이의 작용에 의한 부식토의 형성’이란 책을 내면서 지렁이를 평가한 내용이에요. 그는 비글호를 타고 여행을 다녀온 뒤 집 근처 밭에서 지렁이를 키우며 40년 동안 지렁이를 연구했답니다.
다윈은 지렁이가 1년 동안 약 0.2∼0.5cm 깊이의 흙을 수직으로 섞으며, 이때 표면으로 올라오는 흙만 1ha(헥타르)를 기준으로 17∼40t에 달한다고 결론 냈어요. 지렁이의 똥이 농작물 비료로 작용한다는 사실도 밝혔답니다.
영국에는 지렁이로 과학 활동을 하는 시민들이 있어요. 시민 1850명이 자신이 사는 곳 주변에서 지렁이를 찾고 어떤 종인지, 몇 마리가 있는지 등을 조사하는 거죠. 이들은 스스로를 ‘지렁이 관찰대’라고 부릅니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영국 임피리얼칼리지의 빅토리아 버턴 연구원과 인터뷰를 했어요.
―어떻게 ‘지렁이 관찰대’를 시작하셨나요?
―왜 하필 지렁이인가요?
“지렁이는 건강한 토양을 위해 꼭 필요한 존재예요. 지렁이가 헤집고 다닌 흙 사이로 물과 공기가 들어가면서 식물이 더 잘 자라요. 그런데 사람들은 지렁이보단 조류나 포유류에게 관심이 더 많죠. 저는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고 싶었답니다.”
―그럼 시민 과학자들이 모은 자료는 어떻게 쓰이나요?
“시민 과학자들은 탐사 지역과 토양의 습도, 색깔, 질감, 그리고 지렁이의 색깔과 개체 수를 기록해요. 이 자료를 분석해 지렁이들이 토양 속 수분에 민감하단 사실을 알아냈어요. 또 유기질 비료를 쓴 곳엔 약 20% 더 많은 지렁이가 살고 있었지요. 곧 논문으로 정리된 시민참여과학의 결과를 볼 수 있을 거예요.”
신수빈 어린이과학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