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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규제 강화에 높아진 보류지 인기…처분 방법 두고 깜깜이 논란

입력 | 2020-02-05 17:20:00

동아일보 DB


“보류지(여유분의 아파트) 4채 가운데 3채는 시세대로 공개입찰하고, 1채는 조합장 공로분으로 조합장에게 조합원 분양가로 제공한다.”

지난달 22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14구역 재개발 조합은 이 같은 안건을 조합 대의원회에서 의결했다. 지난해 11월 ‘북한산 두산위브’ 아파트로 준공된 이 아파트 전용면적 59㎡의 현재 시세는 6억~6억2000만 원이다. 2016년 일반분양 당시 분양가는 3억6000만~3억9000만 원에 불과했다. 조합원 분양가가 일반분양가보다 낮은 걸 감안하면 조합장은 이 결정으로 시세차익만 최소 3억 원 이상 거둘 수 있다.

보류지란 조합이 분양 물량의 누락·착오나 소송 등에 대비하기 위해 분양하지 않고 유보한 물량을 뜻한다. 전체 가구 수의 1% 안에서 설정이 가능하다.

조합 내부에서 논란이 커지자 서울 서대문구는 이달 3일 조합 측에 공문을 보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과 서울시 조례에서 규정한 보류지 취지에 어긋난다”며 시정을 요구했다. 홍은14구역 조합장은 5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그간 일부 조합에서 관행적으로 보류지를 조합 몫으로 배분했다”며 “지자체 권고 등을 받아들여 4채 모두 일반분양하기로 결정을 바꿨다”고 해명했다.

비슷한 상황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달 말 입주를 앞둔 서울 강동구 고덕주공3단지 재건축 조합(고덕 아르테온)은 최근 보류지 9채 가운데 1채를 조합 사무장에게 조합원 분양가로 넘기기로 했다가 조합원 반발에 부닥쳤다. 2017년 일반분양 당시 전용면적 59㎡의 분양가는 약 6억 원이었지만 최근 이 면적대 시세는 12억 원에 육박한다.

서울 주요 재건축·재개발 단지에서 보류지를 둘러싼 갈등이 커지고 있다. 1000채 이상의 대단지라 하더라도 보류지는 10채가량에 불과해 그동안 시장의 관심이나 논란이 적은 편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부동산 규제 정책이 강화되고 신규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보류지의 인기는 덩달아 커졌다. 별도 청약통장이나 주택 여부에 관계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일반분양가보다는 비싸지만 입주 시기의 시세 대비 90~95% 수준에서 매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진행된 서울 관악구 ‘e편한세상 서울대입구2차’ 아파트는 13채 보류지를 공개 입찰했는데 42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문제는 공개 입찰 대신 임의로 보류지를 처분하려는 조합들이 나타나면서 불거졌다. 현행 도정법에는 보류지 처분 방식을 ‘일반분양(공개 입찰)할 수 있다’고만 돼 있다. 공개입찰이 강제 규정은 아닌 것이다. 서울시 조례에는 ‘일반분양(공개입찰)해야 한다’고 보다 강화돼 있지만 이를 지키지 않더라도 처벌 규정은 없다. 서대문구 관계자는 “지난해 홍은12구역 재개발에서 보류지 일부를 조합 집행부가 임의로 처분하려 해 경찰에 수사 의뢰를 한 적이 있다”며 “하지만 처벌 규정이 없어 ‘혐의 없음’ 처분이 내려졌다”고 말했다.

권동영 윈앤파트너스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보류지 관련 갈등이 불거지는 이유는 도정법에서 ‘공개 입찰’ 원칙 등 투명한 처리 방식을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분쟁을 줄이기 위해서 도정법의 관련 조항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