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제3국 감염’에 뚫린 방역망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북창동순두부’는 이미 셔터가 굳게 내려져 있었다. 지난달 24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17번째 확진자인 A 씨(38)가 이 식당을 들른 사실이 밝혀진 뒤 문을 닫았다. 근처 가게 직원인 장모 씨(20·여)는 “그 식당에 확진자가 다녀간 사실이 통보된 뒤, 주변 가게도 손님이 다 빠졌다”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싱가포르에서 귀국한 A 씨가 신종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5일 밝혔다. 이날 현지에서 감염된 A 씨가 12일 동안 버스와 고속철도(KTX), 택시 등을 타고 서울과 경기 구리시, 대구 등을 방문한 경로가 공개되면서 해당 지역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 인천공항으로 입국… 서울과 대구 구리 들러
질병관리본부와 구리시 등에 따르면 17번째 확진자는 지난달 18∼24일 싱가포르에 머물다 24일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했다. A 씨는 공항철도를 타고 서울역에 온 뒤 역사 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국방부에 따르면 17번째 확진자는 이날 해군 소속 군무원 가족과 식사를 했다. 하남시도 “하남시에 사는 4인 가족이 A 씨와 제3의 도시에서 접촉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같은 가족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음 날인 26일. 구리시 자택에 머물던 A 씨는 오후에 열이 나 한양대구리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하지만 검사 결과, 단순 발열이란 진단과 함께 해열제를 처방받은 뒤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A 씨는 중국을 방문하지 않아 질병관리본부 지침상 관리대상이 아니었다.
별 차도 없던 A 씨는 이후에도 두 차례 병원을 찾았다. 다음 날인 27일 자택에 있던 A 씨는 인창동 삼성서울가정의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같은 건물 구리종로약국에서 약을 처방받은 뒤 귀가했다. 3일에도 A 씨는 수택동 서울아산내과의원에 들렀다. 당시 마스크를 썼던 그는 체온이 정상이었다고 전해졌다. A 씨는 이날 “감기약을 먹었더니 울렁거린다”며 수액을 맞았다고 한다.
그날 저녁. 17번째 확진자는 회사로부터 “콘퍼런스에 왔던 말레이시아인이 신종 코로나에 감염됐으니 유의하라”는 내용의 e메일을 받았다. 그는 다음 날인 4일 한양대구리병원 선별진료소를 찾았다. 이곳에서 A 씨는 확진검사를 받고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 북부지원으로부터 양성 판정을 통보받았다. 현재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 병원, 마트 줄줄이 휴업… 지역사회 불안
5일 구리시가 A 씨 동선을 공개한 뒤 구리시는 크게 요동쳤다. 그가 다녀간 의원과 약국, 가게 등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A 씨가 진료 받은 삼성서울가정의원은 ‘당분간 휴진합니다.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라고 쓴 안내문을 입구에 붙였다. 인창동에 사는 조모 씨(72·여)는 “너무 무서워서 가까운 시장도 절대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구리시는 A 씨 이동경로의 소독을 확대하고, 관내 어린이집 157곳에 2주 동안 휴원을 권고했다. 경기도교육청은 구리시내 유치원과 초중고교 가운데 2월에 졸업식이나 개학 등을 할 계획이었던 학교는 3월로 일정을 연기하도록 했다. 부산시교육청은 대구에서 A 씨와 접촉한 친척 B 군이 다니는 부산 연제구 한 초등학교를 6, 7일 휴업한다고 밝혔다. 시교육청에 따르면 A 씨와 접촉한 B 군 어머니는 5일 발열 증세가 나타났다.
대구시는 “A 씨 이동경로를 파악해 방문 장소 소독을 실시하고 있다”며 “대구를 다녀간 지 열흘이 넘었다. 확진자와 접촉했어도 8일까지 증세가 없다면 감염되지 않았다고 봐도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소영 ksy@donga.com·고도예 / 대구=명민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