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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우한 폐렴이 드러낸 韓中 정권의 맨얼굴

입력 | 2020-02-06 03:00:00

정부 조치에 불쾌감 드러낸 中대사, 疫病까지 ‘운명공동체’로 묶자는 건가
정보 통제하며 책임지지 않는 국가, 실력 없이 포퓰리즘 남발하는 정부
국민이 비상하게 대응해야 할 판




김순덕 대기자

중국 외교부에 이렇게 보드라운 면모가 있는지 몰랐다. 중국 신종 코로나바이러스(中國新型冠狀病毒)에 대한 4일 화춘잉 대변인의 브리핑을 보고 나서다. “어떤 나라는 극단적이고 차별적인 언사를 발설했지만 일본 후생노동성 관리들은 ‘바이러스가 나쁘지, 사람이 나쁘냐’고 말해줬다”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험한 언사를 쓴 나라가 요즘 중국이 각을 세우는 미국인지 아닌지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도 1일부터 중국 후베이성 체류자에 대해 입국 금지 조치를 시행한 나라다. 한국은 4일 시작했다. 화춘잉이 일본에 감사를 표한 날, 아직 신임장도 제정하지 않은 주한 중국대사 싱하이밍은 우리 정부의 조치에 대해 “많이 평가하지 않겠다”고 불쾌감을 표했다.

바이러스가 죄(罪)이지 환자가 무슨 죄냐는 말은 백번 옳다. 한국 정부는 중국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대접을 받는지 모르겠다. 4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밝혔듯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이며 정부의 기본 책무”다. 중국 외교부도 자국민의 안전을 위해 주재국에서 열심히 홍보활동을 하도록 지시했을 것이다.

구글을 검색하면 최근 일주일 사이 아이슬란드,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국대사들의 인터뷰가 약속이나 한 듯 줄줄이 뜬다. 싱하이밍 같은 오만한 발언은 눈 씻고 봐도 없다. 아무리 우리 대통령이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양국은 운명공동체”라며 중국 패권 쪽에 섰다고 해도, 외교부 부국장 출신의 대사가 “중한(中韓)은 명실상부한 운명공동체가 됐다”며 전염병까지 더불어 가자고 강요할 순 없다. 내정간섭을 넘어 주재국을 속국으로 보는 언사다.

그런 중국을 청와대는 “한중이 긴밀히 협력하자는 취지”라며 싸고도니 국민적 자존심이 무너진다. 그 한없는 너그러움을 왜 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절반의 국민이나 야당에는 보여주지 않는지 안타깝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질병보다 가짜뉴스를 차단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렇다면 “중국 정부는 공개적이고 투명하고 책임감 있는 태도로 국제협력을 하고 있다”는 싱하이밍의 말부터 차단해야 할 것이다.

작년 12월 30일 “화난 수산물시장에 갔던 일곱 명이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에 걸렸으니 공중보건 이슈로 다뤄야 한다”고 의사들 채팅방에 처음 알린 우한 중심병원 의사 리원량 등 8명을 유언비어 유포자라며 경을 친 나라가 중국이다. 우한시장 저우셴왕은 “지방정부로서 우리는 관련 정보와 권한을 얻은 다음에야 정보를 공개할 수 있었다”고 했다. 중앙정부, 즉 당 중앙 시진핑이 정보 통제를 하고 있다는 의미다. 지금도 정확한 환자 수가 공개되는지 알 수 없다.

사람 목숨이 걸린 문제까지 비밀로 유지하며 정보를 통제하고, 국민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 것이 권위주의 정권이다. 시진핑이 음력 설날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우한 폐렴 관련 소조를 구성하고 리커창 총리를 조장으로 명한 건 좋다. 3일 회의에선 “방제작업에서 형식주의와 관료주의를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고 내로남불 지시를 내렸다. “책임을 떠넘길 경우 책임자는 물론 당정 지도자도 문책하겠다”는 선언을 보면, 두 달 후 일본 국빈방문 때까지 우한 폐렴을 해결하지 못하면 자기는 쏙 빠지고 우한시장은 물론 리커창도 희생양으로 삼겠다는 소리 같다.

바로 다음 날 문 대통령도 “총리가 전면에 나서 비상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책임의 한계선을 명확히 그었다. 중국 방문이 없었다는 이유로 감염 검사도 못 받고 딸까지 감염시킨 16번 환자를 생각하면 내가 다 억울해진다. 서울의 한 보건소장은 “검사 키트가 부족해 감염 의심자에 대한 검사는 중앙 통제하에 해야 한다”며 발을 동동 구르는데 대통령은 ‘시범 보건소’를 찾아선 의료진의 과로를 걱정했다. 집권 1000일 동안 그저 일 일 일, 참 기막힌 일을 주로 하는 모습이다.

“이번 감염증은 중국의 거버넌스 체계와 능력에 대한 종합적 테스트”라고 시진핑은 강조한다. 선거로 지도자의 책임을 묻는 민주주의는 혼란과 포퓰리즘을 부를 뿐이고, 공산당 일당독재야말로 실력으로 하는 통치라고 믿는 시진핑이 과연 테스트를 통과할지는 알 수 없다.

중국이 흔들리면 세계 경제보다 우리 경제가 먼저 쓰러질 우려가 있다. 중국이 흔들리지 않으면 한국이 진짜 운명공동체, 아니 조공국이 될까 더 우려스럽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