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김경희 전 노동당 비서(앞줄 왼쪽)가 조카 김여정과 함께 평양의 한 극장에서 신년 기념공연을 참관하고 있다. 조선중앙TV 화면 캡처
주성하 기자
결론부터 말하면 장성택이 부활할 일은 없다고 본다.
2013년 12월 13일자 노동신문에 실린 판결문을 보면 장성택에겐 ‘반당반혁명 종파분자, 만고역적, 대역죄인’ 등의 죄명이 들씌워졌다. 이 중 하나만 해당돼도 북에선 살아날 사람이 없다. 판결문은 맨 마지막에 “사형에 처하기로 판결하였다. 판결은 즉시 집행되었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12월 12일 이전에 장성택을 죽였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제 장성택이 살아 나타나면 김정은은 지금까지 잔악한 지도자로 욕은 욕대로 먹고, 또 세계와 북한 주민의 신뢰까지도 철저히 잃게 된다. 장성택 처형 이후 수많은 그의 심복들이 처형되거나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다. 김경희도 공식석상에서 사라졌다.
김경희와 장성택은 1990년대부터 사실상 별거 상태였다. 게다가 하나밖에 없던 자식인 장금송마저 2006년 프랑스 파리에서 자살했다. 그나마 부부의 연을 이어주던 끈이 끊긴 것이다.
20대 중반의 어린 김정은이 권좌에 오르자 중국은 이를 북한을 변화시킬 절호의 기회로 봤다. 2012년 8월 중국은 김정은도 아닌 장성택을 베이징으로 불렀다. 이때 중국 지도자들은 그에게 “개혁개방으로 간다면 실질적 권력을 잡도록 적극 밀어주겠다”는 언질을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비밀은 북에 전해졌다. 유출자로 지목된 저우융캉(周永康) 중국 공산당 상무위원은 장성택이 처형된 직후 체포돼 국가비밀 누설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권력은 둘이 나누지 못한다. 만약 어린 조카를 우습게 보고 야심을 키운 장성택이 중국이란 엄청난 힘을 등에 업고 북한을 장악하면 김씨 가문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백두혈통을 자처하는 김씨 가문 최고 어른 김경희는 패밀리와 허울뿐인 남편 중 누굴 택할까.
북한은 사실상 김씨 패밀리가 오너인 재벌과 비슷하다. 창업주 김일성, 2대 김정일, 그리고 3대 김정은까지 내려왔다. 한국 재벌 중에 대가 끊기지 않았는데도 재벌의 딸이 남편을 선택해 성이 다른 사위에게 기업이 넘어간 사례는 없다. 패밀리 기업의 특징이 바로 이렇게 핏줄이 최우선 순위라는 점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반전이 있었다.
장씨 집안은 사라진 지 일주일 만에 다시 평양에 나타났다. 장성택 조카들을 포함해 대다수가 거주지는 물론이고 직업까지 원상 복구됐다. 부관참시를 해도 모자랄 ‘만고역적, 대역죄인’인 장성택의 두 형은 지금도 ‘애국열사릉’에 애국자로 대접받으며 묻혀 있다.
물론 장성택의 혈육 중에 함께 권력의 단맛을 봤던 몇 명은 처형된 것도 사실이다. 장씨 집안의 복권은 몇 년 전에 정보를 들었고, 최근 내막을 잘 알 수 있는 소식통에 의해 교차 확인도 했다.
이들을 살려낸 것도 다름 아닌 김경희였다. 장성택의 제거로 힘이 빠진 그의 패밀리까지 멸족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김경희는 장성택과 사이가 나빠지기 전엔 장씨 집안의 어른 역할도 같이하며 시댁 식구들을 엄청 챙겼다. 그래서 아기 때부터 돌봐주며 키웠던 시댁 조카들까지 죽일 만큼 모질진 못했던 것 같다. 물론 김경희가 죽은 뒤에도 장씨 집안이 잘 살아있을 것이라고 장담하긴 어렵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