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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 화재… 정부 “배터리 이상 탓” 업계 “인과관계 없다”

입력 | 2020-02-07 03:00:00

조사단 2차발표에 업계 정면반박




김재철 민관합동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사고 원인조사위원회 공동단장이 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지난해 8월 이후 발생한 ESS 화재 5건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세종=뉴시스

작년에 발생한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 사고 5건 중 4건은 배터리가 문제라는 정부 발표가 나왔다. 지난해 6월 1차 조사에선 운영관리 미흡을 문제 삼았던 것과 다른 결론이다. 배터리 제조업체들은 “배터리가 화재의 원인이라고 볼 수 없다”며 이례적으로 강하게 반발했다.

6일 민관합동 ESS 화재사고 조사단은 정부세종청사에서 “지난해 8월부터 10월 사이 발생한 화재 사고 중 충남 예산군, 강원 평창군, 경북 군위군, 경남 김해시에서 발생한 것은 배터리 이상을 화재 원인으로 추정한다”고 발표했다. ESS는 생산된 전기를 저장해 놓았다가 필요할 때 공급하는 시스템으로 신재생에너지 운영에 필수적이다.

LG화학이 생산한 제품에서 난 화재가 3건(예산, 군위, 경남 하동군), 삼성SDI가 제조한 제품에서 난 화재는 2건(김해, 평창)이다. 조사단은 이 중 하동에서 발생한 화재는 배터리가 아니라 외부로 노출된 충전부에 이물질이 닿아서 발생한 화재라고 설명했다.

조사단은 발화 지점 배터리가 불에 타 원인 분석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사고 사업장과 동일한 시기 및 모델 등으로 설치된 유사 사업장을 분석했다고 설명했다. 조사 내용에 대해선 기업의 소명 의견을 듣고 검토를 거쳤다고 밝혔다.

○ 배터리업계 “다른 데이터로 분석, 인과관계도 오류”


하지만 LG화학, 삼성SDI는 자체 조사 결과를 근거로 정부 발표를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삼성SDI는 조사단 결과가 맞다면 같은 배터리가 쓰인 다른 곳에서도 화재가 발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같은 배터리가 쓰인 해외 사업장에선 화재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배터리가 발화 지점이라고 하더라도 발화 원인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고도 했다. 휘발유가 있다고 저절로 불이 붙지 않는 것처럼 배터리는 가연성 물질일 뿐 점화원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조사단은 또 평창 화재는 배터리가 충전 상한을 초과하거나 방전 하한보다 낮은 전압에서 운용된 기록이 있다며 이를 화재 원인 중 하나로 언급했다. 이에 대해 삼성SDI 측은 “상하한 전압은 배터리 제조사가 성능을 보증하기 위해 설정한 것일 뿐이지 그간 운용은 안전 전압 범위 내에서 이뤄졌다”고 반박했다. 또 삼성SDI는 “조사단이 분석했다고 밝힌 배터리 전압 데이터는 실제 화재 현장이 아니라 삼성SDI가 제공한 다른 현장의 표본에서 나온 데이터”라며 분석이 기초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조사단은 화재 현장에서 수거한 배터리에서 내부 발화 때 나타나는 용융(물체가 녹아 섞이는 현상) 흔적이 발견됐다고 지적했으나 LG화학은 인과관계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다른 부분에서 화재가 나도 배터리로 불이 옮겨붙으면서 배터리 안에 용융 흔적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 “몇 건 표본 분석으로 제품 결함 결론은 비약”


기업이 정부 사고 조사결과 발표에 반박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정부가 현장의 관리 부실 책임을 기업에 떠넘기는 모양새라는 말이 나온다. 정부는 2017년 8월부터 1년 9개월간 23건의 ESS 사업장 화재가 발생하자 ‘민관합동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조사를 진행했다. 지난해 6월 조사위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ESS 설비에 대한 부실한 보호·운영·관리 체계가 원인이라고 밝혔다. 이 발표 이후에도 화재가 발생하자 조사단은 추가로 조사했고 이번에는 배터리가 문제라고 결론을 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같은 배터리를 썼는데, 관리가 잘되는 건물 지하에 설치된 ESS나 관리 책임자가 수시로 점검하는 대형 사이트에는 불이 나지 않았다”며 “태양광은 ESS 관리가 부실한 사이트가 적지 않은데 정부 발표는 관리 문제를 놓쳤다”고 했다. 이번 조사 대상인 5개 화재 사건 중 4곳이 태양광, 1곳이 풍력 발전에 사용된 ESS였다.

조재필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에너지·화학공학부 교수는 “갤럭시 노트7 배터리 발화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삼성전자는 20만 대 이상의 완제품으로 테스트해 원인을 규명했는데, 이번 조사처럼 몇 건의 조사로 배터리 결함으로 모는 것은 방법상 문제가 있다”며 “해외에서 쓰인 같은 배터리에는 왜 불이 안 났는지도 규명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번 발표로 기업 부담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LG화학은 지난 화재와 관련해 충당금 3000억 원을 설정해 지난해 4분기(10∼12월)엔 275억 원 적자를 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발표가 해외 영업에도 악영향을 주진 않을지 기업들이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임현석 lhs@donga.com / 세종=최혜령 / 지민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