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없는 초목, 꼭지 없는 열매처럼 나약한 존재, 먼지처럼 흩날리며 한시도 온전한 참모습을 유지하지 못하는 존재, 이런 인생에서 사귐의 친소(親疎)를 가린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우연히 얻은 작은 즐거움일지언정 헛되이 넘겨버릴 수 없으니 술 한 말로 이웃을 불러들이는 것조차 더없이 소중하다. 한데 인생은 과연 자기 방향을 스스로 움켜잡을 수 없을 만큼 무기력하기만 할까. 이 잔인한 결론에 공감하는 순간 우리는 미망(迷妄)과 혼돈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그래서 ‘즐거울 땐 한껏 즐기라’는 권유와 ‘때맞춰 자신을 독려하라’는 경구(警句) 사이에서 잠시 혼란스럽고 의아해진다. 이 의문을 풀고 시를 맘 편하게 읽으려면 그저 삶 앞에 겸손해질 수밖에. 그리하여 도가적 허무 의식과 유가적 현실 지향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현재에 충실하자고 스스로를 독려할 수밖에.
잡시란 즉흥적인 느낌을 토로한 무제시. 이 시는 연작시 12수 가운데 제1수인데 시제에 걸맞게 4구씩 따로 분리해 읽어도 각기 제 주제를 갖는다. 연작시 전체는 삶의 변화막측과 생명의 짧음에 대한 술회가 기조를 이룬다.
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