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검사동일체 원칙 폐지 주장하며 독재정권도 엄두 못 냈을 ‘감찰권’ 협박 靑 과천분소, 여의도지점 전락한 법무부·여당…오로지 上王같은 친문만 바라보며 폭주
이기홍 논설실장
2013년 개봉된 ‘감기’는 바이러스의 전염력을 긴박감 있게 그려내는데 중후반부터 엉뚱하게 전시작전권이 주요 내용으로 등장한다.
분당신도시에서 치사율 100%의 독감 바이러스가 발병해 정부가 분당을 봉쇄하자, 미군은 전폭기를 대거 출동시켜 아예 분당시민을 폭격하려 한다. 한국 대통령이 반대하지만 ‘전작권이 미군에 있어’ 속수무책이다.
‘감기’ 개봉 당시에도 지적한 바 있지만 전작권의 실체를 전혀 모른 채 만들었거나 고의로 왜곡한 내용들이다.
전시작전권은 미군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한미 간에는 데프콘(DEFCON·방어준비태세)의 각 단계별로 한미연합사에 배속시킬 부대를 규정한 ‘포스 리스트(Force List)’가 있다. 데프콘 격상은 한미 양국 합의로 정한다. 한국 대통령이 동의 안 하면 지휘권이 넘어갈 수 없는 시스템인 것이다.
연합사령관은 양국 합참의장으로 구성된 군사위원회(MC), 그리고 양국 대통령이 대표하는 ‘국가통수 및 군사지휘기구(NCMA)’의 지휘를 받는다. MC와 NCMA는 모두 한미 양국 간 합의제로 운영된다. 어느 한쪽의 반대가 있으면 연합사령관은 어떤 작전도 할 수 없다.
숱한 여권 인사들이 전작권 조기 환수를 강조하지만 실제로 전작권이 어떤 시스템인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라는 게 전직 연합사 고위관계자의 분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주 장성진급식에서도 전작권 환수를 강조했다.
권력은 대중문화에서 형성된 이미지를 통치수단으로 활용한다. 최근 추미애 법무장관이 검사동일체 원칙을 비난하며 검사들에게 사실상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불복종을 부추긴 것도 마찬가지다.
무수한 영화·드라마에서 검사동일체 원칙은 재벌이나 부패한 정치인과 결탁한 검찰 상층부가 정의감 넘치는 일선 검사를 억누르고 사건을 덮어버리는 억압 수단으로 묘사된다.
추 장관은 검사동일체 원칙이 15년 전 법전에서 사라졌다고 강조했다. ‘15년전’ ‘법전’ 같은 구체적 설명까지 곁들인 탓에 뉴스에서 추 장관 발언을 처음 접했을 때는 실제로 검사동일체 원칙이 폐지된 줄 알았다. 그런데 법조인들 설명을 들어보니 사실과 달랐다.
검사동일체 원칙은 법전에서 사라지지 않았고, 폐지되지도 않았다. 검찰청법의 해당 조문 내용이 변화했을 뿐 검사가 상급자의 지휘에 따른다는 본질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추 장관은 또 감찰권을 들먹이며 “(검찰이) 실감 있게 받아들이는 분들이 아닌 것 같다”고 했는데, 독재정권 시절에도 그런 협박조의 표현은 쓰지 않았다.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검찰의 준사법기관적 특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실토한 셈이다.
추 장관의 억지 논리는 연일 이어진다. 국회에의 공소장 제출 거부 이유로 ‘인권 침해’를 들었는데, 5선 의원 출신인 그가 과거 법무부의 공소장 제출을 비판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당 대표 시절 공소장 내용을 토대로 박근혜 정권의 비리를 폭로하는 데 앞장섰다. 적폐청산 수사 등의 공소장 내용을 거의 실시간으로 좌파 언론에 흘린 것도 주로 추 대표 시절 민주당이었다.
조국 장관 취임 직후 법무부가 소환을 비공개로 하겠다고 했고, 첫 적용 케이스로 조국 부인은 지하주차장을 통해 몰래 검찰에 다녀갔다. 그런데 다른 이들은 그런 인권 보호 혜택을 제대로 못 받고 있다. 예를 들어 4일 검찰에 소환된 옛 삼성미래전략실장처럼 ‘우리 편’이 아닌 인사들은 여전히 그대로 노출된다.
이런 일련의 행태는 잣대의 이중성, 내로남불 차원을 이미 넘어섰다. 권력을 가졌으니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 하겠다는 오만이다.
공화제는 권력의 상호견제를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집권세력은 이를 존중할 생각이 전혀 없는 듯 하다. 요즘 추 장관과 국회 지도부의 행태는 ‘청와대 과천분소’ ‘청와대 여의도지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공동체가 지켜온 룰이나 시민과의 보이지 않는 계약 같은 건 안중에 없다. 오로지 상왕(上王) 같은 존재인 친문 핵심만 의식할 뿐이다.
권력의 분산과 견제, 공화제 같은 민주주의 가치를 체화하지 못한 인사들은 좌파건 우파건 독재 행태를 띤다. 그런 권위주의 세력이 주로 의존하는 수단은 교묘히 사실처럼 포장한 거짓 이미지와 선동이다.
87년 민주항쟁으로 군부독재를 축출한 지 30년이 넘게 흘렀건만 권력에 취해 오만해진 참주(僭主)정치 행태가 계속되고 있으니, 민주주의는 참으로 어려운 목표인 것 같다.
이기홍 논설실장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