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희진 산업2부 차장
최근 부동산 관련 단톡방과 카페에는 이런 무순위 청약 정보가 빠르게 공유되고 있다. 무순위 청약이란 일반분양 계약 포기자나 청약 당첨 부적격자가 발생해 남은 물량을 당첨자에게 무작위 추첨으로 나눠주는 것을 말한다. 19세 이상은 청약통장이 없어도 건설사 홈페이지에서 평형과 타입을 선택하면 청약이 가능하다. 로또보다 경쟁률은 훨씬 낮은데 당첨되면 수억 원의 차익을 기대할 수 있으니 신종 로또로 불리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지인에게 한 번쯤 운을 시험해보는 용도로 무순위 청약을 권하기도 한다.
어쩌다 아파트 청약이 운을 시험하는 로또가 됐을까. 신축 아파트는 점점 한정판이 되어 가는데, 그걸 시세보다 착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이 청약 아니면 경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매보다 문턱이 낮은 청약시장이 가점제 위주로 개편되며 청약의 문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가점에서 불리한 젊은층은 좁은 틈을 비집고 우회로를 찾기 시작했다. 무순위 청약, 보류지 물량 등 몇 년 전이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틈새시장에 투자수요가 몰리는 이유다.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복부인’이란 용어를 탄생시켰던 1970년대 말 아파트 붐은 평범한 가정주부까지 투자에 뛰어들게 할 만큼 뜨거웠다. 하지만 투기규제지역 지정 및 거래허가제를 도입한 8·8부동산규제 한 번에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지금은 다르다. 단톡방과 카페를 통해 전문가의 투자 전망과 임장 정보 등이 빛의 속도로 공유 및 전파되며 전 국민의 ‘부동산 머리’는 점점 똑똑해지고 있다. 정부가 수차례 규제의 방망이를 휘둘러도 아파트 가격은 자꾸만 튀어 오르고,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두더지게임으로 변해가고 있다. 서울이 규제 대상이 되자, 비(非)규제지역으로 투자수요가 쏠리고, 9억 원 이상 대출을 규제하자 9억 원 미만 아파트가 오르는 식이다. 그때그때 망치로만 때려잡는 두더지게임으로는 절대 튀어 오르는 두더지를 잡을 수 없다. 두더지가 왜 자꾸 튀어나오는지 생각해야 한다.
염희진 산업2부 차장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