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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 여행 비상[횡설수설/서영아]

입력 | 2020-02-07 03:00:00


“이대로 14일간 이 방에 계셔야 합니다.” 지난달 20일 일본 요코하마를 출발하는 ‘초봄 동남아 크루즈 여행’에 나선 일본인 A 씨. 홍콩 베트남 대만 등을 거쳐 다시 요코하마로 돌아오는 일정은 본래 4일 끝났어야 했다. 하지만 5일 오전 8시경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10명 확진’이라는 선내 방송이 나온 뒤부터 모든 게 달라졌다. 마실 물을 구하려 무심결에 객실 문을 열자 다급히 달려온 승무원이 막아섰다. 모든 식사는 룸서비스로 바뀌었다. 그는 “2주는 너무 길다”며 곤혹스러워하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이 전한다.

▷이렇게 승객과 승무원 3700여 명이 초대형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 갇혔다. 20일 함께 출발해 25일 홍콩에서 내린 80대 남성이 그 뒤 현지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탓이다. 발열 등 증세를 보이는 273명 중 어제까지 102명의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이 중 20명이 양성이다. 선내 집단 감염이다.

▷졸지에 감금 신세가 된 일부 승객은 트위터로 선내 소식을 전하고 있다. 당초 패닉에 빠져 동요했던 승객들도, 선박 내 관리 운영도 안정돼 가는 듯하다. 첫날인 5일 식사는 두세 시간씩 늦게 도착했지만 6일 아침 식사는 제시간에 왔고, 점심부터는 메뉴를 고를 수도 있게 됐단다. 다만 ‘가까운 방에서 노인이 기침하는 소리가 들린다’며 감염 공포가 엄습한다고 털어놓는 이들도 있다.

▷홍콩에서도 3600여 명을 태운 크루즈선이 승무원 30여 명의 의심 증세 탓에 해상 격리됐다. 크루즈는 한정된 공간에서 오랜 기간 공동 생활을 하다 보니 전염병에 취약할 수 있다. CNN은 크루즈를 ‘떠다니는 페트리 접시(Petri dish·세균배양접시)’라고까지 표현했다.

▷크루즈 여행은 뭇사람들이 동경하는 ‘버킷리스트’다. 해상 격리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의 여행 요금은 1인당 25만 엔(약 269만 원)에서 138만2000엔(약 1486만 원). 3등석에 해당하는 25만 엔 승객의 경우 객실은 겨우 잠만 잘 수 있는 정도의 크기다. 식사는 다양한 식당에서 즐기고 낮에는 정박지에 내려 관광하거나 배 안에서 사우나 등 다양한 시설을 즐길 수 있으니 방은 작아도 된다고 여긴 승객들이 많았다.

▷격리 수용은 첫 1주일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밖에 나갈 수도, 사람을 만날 수도 없이 오롯이 혼자 보내야 하는 여건은 시간감각을 잃게 하고 우울증까지 낳는다. 우리 사회도 자가 격리든 코호트 격리(집단 격리) 등 격리를 견디고 있는 이들이 많다. 다들 남은 시간을 무사히 넘기고 건강히 자유를 찾기를 응원해 본다.
 
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