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학을 말하다] <1> 암 정복 가능할까
암 정밀 의료가 보편화하면 암 환자가 전국 어디에 있든 자신의 유전자 지도에 맞는 최적의 처방전으로 동일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암 의학자들은 이런 치료가 10여 년 후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사진은 고려대 의료원이 제작한 ‘미래의 병원’ 영상 중 정밀 의료 시스템을 표현한 이미지다. 고려대 의료원 제공
암 정복은 가능할까.
암 의학자들은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지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2019년 국내 암 평균 5년 생존율은 70.4%다. 이 생존율은 매년 0.5∼0.6%포인트씩 증가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2030년경 암 5년 생존율은 90%에 이른다. 지금으로부터 10년 후가 되면 암 환자 10명 중 9명이 ‘완치’된다는 뜻이다.
암 의학자들은 “암의 진단, 치료, 수술 등 전 과정에서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그 결과 5∼10년 후에는 암이 만성 질환 수준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런 미래가 가능한 것은 암 정밀 의료 덕분이다.
정밀 의료는 유전체 정보와 생활환경, 습관 정보 등을 토대로 좀 더 정밀하게 환자를 분류하고 각각의 특성에 맞는 치료법을 제공하는 차세대 의료 서비스를 의미한다. 이를 위해 빅데이터 분석 등 첨단기술을 활용한다. 암 정밀 의료의 가장 큰 특징은 진단과 치료 전 과정에서 환자 맞춤형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지금은 일부 병원에서 부분적으로만 시행되지만 전국 단위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암에 걸리면 무조건 대도시에 있는 대형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지역별·병원별 의료진의 수준 격차가 크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5년 후인 2025년이 되면 이런 논란 자체가 불필요해질 것 같다. 그때는 암 환자가 더 나은 치료를 받겠다며 굳이 서울 또는 대도시의 대형 병원으로 가지 않아도 된다. 전국 어디서든 똑같은 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위암 4기로 진단받은 A 씨의 가상 사례를 통해 알아보자.
A 씨가 다니는 지역 소도시 동네 병원은 A 씨의 암 조직을 떼어내 암 유전자를 담당하는 ‘정부 기관’으로 보낸다. 이 기관은 A 씨의 암 조직에서 질병과 관련된 유전자 400개 이상을 추출한다. 이어 기관이 기존의 암 환자에게서 추출해 보관 중인 많은 치료 데이터와 비교한다.
이어 A 씨에게 맞는 최적의 처방전을 만든다. 현재 사용되는 항암제는 40∼50개이지만 2025년에는 최소한 200개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의학자들은 예상한다. 이 기관은 1세대 항암제부터 4세대 항암제까지의 목록을 쭉 늘어놓는다. 그 다음 칵테일을 만들 듯이 A 씨의 유전자 지도에 맞는 항암제만을 골라 처방한다. 이 처방전은 곧 병원으로 전송된다.
이런 치료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정부 차원의 유전자 데이터베이스가 필요하다. 현재 K-마스터 사업단이 전국 49개 병원의 암 환자 데이터베이스를 수집하고 있다. 5000여 명의 데이터가 확보됐으며 최종 1만 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 데이터베이스가 확보되면 현재 400여 개까지 검사 가능한 유전자의 수가 500개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수많은 유전자 변이에 대해서도 대처할 수 있고, 암 환자에게 맞는 치료제를 구할 확률도 현재의 20% 정도에서 최대 90%까지 높아진다.
시작 단계이기는 하지만 이미 이런 치료법이 일부 활용되고 있다. 얼마 전 지방의 한 병원에서 60대 폐암 4기 환자가 고려대 안암병원에 왔다. 확인해 보니 그 환자는 지방 병원에서 3개의 유전자 검사를 했고, 그에 맞춰 항암 치료를 했다. 고려대 안암병원 의료진은 유전자 수를 380개로 늘려 검사했다. 그 과정에서 폐암과 관련된 드문 유전자를 발견했고, 마침 그 유전자에 적합한 특효약을 찾아내 처방했다. 그 결과 환자의 상태는 크게 개선됐다. 그 환자는 현재 3개월마다 검사하기 위해 병원을 찾을 정도로 호전됐다.
암이 의심되면 해당 부위의 조직을 떼어내 정밀 분석한 뒤 암을 확진한다. 이런 방법을 ‘조직 생검’이라고 하는데,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는 방법이다. 이런 방식은 정확도가 높지만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환자의 불편도 크다.
반면 혈액과 같은 체액으로 암을 진단하는 방법도 있다. 이를 ‘체액 생검’이라고 한다. 빠르고 쉽게 암을 진단할 수 있지만 암 세포의 수가 적을 경우 암을 발견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아직까지는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이 연구는 체액 생검이 조직 생검을 대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라는 점이 한계로 제기됐다. 암 환자들은 혈액에서 쉽게 암 세포를 찾을 수 있지만 0기 혹은 1기 초반의 암 환자인 경우 혈액으로 흘러드는 암 세포 수가 적어 조기 진단을 놓칠 수 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학자들은 2030년경에는 체액 생검으로 암을 진단하는 시대가 될 거라고 예상한다. 지난해 미국 국립암연구소가 이와 관련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체액 생검 임상시험에 돌입하기도 했다. 비슷한 임상시험을 진행 중인 바이오 기업도 여럿 있다.
체액 생검이 보편화하면 암 검사 풍경이 확 바뀔 것으로 보인다. 위암과 대장암 검진을 위해 내시경 검사를 한다거나 췌장암과 폐암 검진을 위해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하지 않아도 된다. 혈액이나 다른 체액만으로 검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체액 생검을 어느 정도 기간 만에 하는 것이 좋은지 등의 세부 사항은 앞으로도 연구가 더 필요하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동아일보-고려대 의료원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