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경험 묻고 열 통증 가하자 흑인이 백인보다 더 크게 반응
6일 경기 수원시 성균관대에서 기자가 열 통증 실험장치를 이용해 팔에 통증을 가하는 실험을 체험하고 있다.
6일 경기 수원시 성균관대 엔(N)센터 1층의 한 실험실. 우충완 성균관대 글로벌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가 더 강한 통증을 주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우 교수가 국내에는 4대밖에 없는 열 통증 실험장치를 조작하자 실험 대상으로 나선 기자의 팔에 붙인 패치에서 찌르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사우나보다 훨씬 낮은 온도인 46.5도를 가했을 때도 미간을 찌푸릴 정도의 고통이 왔는데 1도를 더 올리자 참기 힘들 정도의 통증이 느껴졌다.
우 교수는 이 열 통증 실험장치로 ‘차별의 고통’을 연구하고 있다. 열 통증과 사회적 차별은 과연 어떤 관계일까. 우 교수는 “방금 느낀 통증의 차이는 미국 사회에서 같은 차별에 노출됐더라도 백인계 미국인과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느끼는 고통의 차이와 같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미국에서는 흑인이 백인보다 고통을 더 잘 견딘다는 주장이 통설처럼 내려온다. 혹독한 노예 제도와 오랜 차별을 견뎌오면서 고통과 통증에 무뎌졌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연구팀은 이 통설이 완벽히 틀렸다는 것을 입증했다. 오히려 흑인들이 차별의 기억이 뇌에 각인되면서 고통을 더 강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우 교수는 “미국에선 의사들이 같은 통증에도 백인에게 알약을 2개 주지만 흑인에겐 1개만 준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라며 “여러 연구에서 흑인이 통증을 잘 견딘다는 통설과 반대되는 결과가 보고됐고 이번에 이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백인계 미국인 30명과 히스패닉계 30명, 아프리카계 28명을 상대로 열 통증 실험을 했다. 연구팀은 먼저 실험 참가자들이 느낀 차별의 수준을 판단하기 위해 평소 겪은 차별 빈도와 이에 대한 심리적 태도를 묻는 설문을 했다. 그리고 각각의 실험 참가자에게 열 통증을 가했다. 실험 결과 흑인 참가자들은 차별에 민감할수록 같은 열을 가했을 때 더 큰 통증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별에 민감하다는 것은 그만큼 차별 경험이 많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연구팀은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로 뇌의 어떤 부분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지도 살펴봤다. 흑인 참가자들에게서만 차별을 당한 횟수가 많을수록 열 통증을 가했을 때 뇌의 측좌핵(NAc) 영역이 다른 영역보다 더 많은 신호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 교수는 “측좌핵에는 뇌가 학습을 하는 데 필요한 예측 회로가 있다”며 “차별에 대한 경험에 따라 통증을 예측하고 반응하는 정도가 달라진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과거 차별의 경험이 뇌에 각인되며 통증을 느끼는 시스템까지 바꿨다는 분석이다.
수원=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