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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칼럼]황교안, 폐쇄정권 닫힌 門 열어젖힐 수 있나

입력 | 2020-02-10 03:00:00

官運의 黃, 보수통합서도 常數… 머뭇거리는 행보, 기대 못 미쳐
文정권, 무슨 폐쇄회로 갇힌 듯 善惡이분법, 프레임 빠져 정책·선동
黃, 몸 던지는 용기·희생 보여줄 건가




박제균 논설주간

황교안의 관상(觀相)은 정평이 나 있다. 동아일보에 연재됐던 허영만 화백의 만화 ‘꼴’의 감수자이자 작중 인물이었던 관상가 신기원이 극찬했을 정도다. 관상의 완성은 성(聲)인데 자유한국당 황 대표는 ‘목소리까지 갖춘 귀상(貴相)’이라는 것이다. 관상뿐이 아니다. 손금도 특이한 편이다. 가로로 한일자가 짙게 그어진 이른바 ‘막쥔 손금’이다. 두 손 다 그렇다. 본인도 한 손이 아니라 양손 모두 막쥔 손금은 드물다고 했다.

뜬금없이 웬 관상과 손금이냐고? 개인적으로는 관상이나 손금을 안 믿는 쪽이다. 다만 황 대표가 자신의 관상과 손금을 의식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특출한 관상과 손금을 본인이 의식한다면 정체성 형성은 물론 정치를 하는 동인(動因)에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관상과 손금 때문인 줄은 모르겠으나 관운(官運)은 타고난 듯하다. 법무부 장관, 국무총리에 이어 희귀한 대통령권한대행까지 해봤다. 무엇보다 황교안은 한국 정당사에서도 특이한 존재다. 꽃가마를 태운 영입 케이스가 아니라 제 발로 거대 정당의 문을 열고 들어가 대표 자리까지 거머쥔 드문 경우다. 이 모든 게 갑자기 돌출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과 탄핵, 그 뒤 황폐해진 한국당의 내부 사정에 따른 것이나 그렇게 운때가 들어맞는 걸 세칭 ‘관운이 좋다’고도 한다.

단식만 해도 그렇다. 시작할 때는 “갑자기 웬 단식?” 소리를 들었지만 정치적 이벤트로서 성공을 거뒀다. 정치인의 단식에는 ‘불순물’이 끼기 십상이지만, 황 대표는 시쳇말로 ‘FM대로’ 8일을 해냈다. 이 단식으로 그는 박근혜 탄핵 이후 눈 가는 곳이라곤 없던 이 정당에서 황교안이라는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특히 한국당에 고질적으로 따라붙는 ‘웰빙’ 이미지를 자신에게서 떨어버리는 성과도 거뒀다.

일각에선 황 대표의 기독교 경도(傾倒)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갑작스럽게 단식에 돌입한 것도 그가 빼먹지 않는 새벽기도의 영향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반론도 나온다. 문재인 정권 들어서 집권 운동권 세력과 좌파 시민·사회·노동·문화단체, 아울러 소위 ‘문파’라는 극성 지지 세력이 사실상 조직적인 ‘좌파 공동체’를 구축한 터에 보수 쪽에서 그에 대항할 만한 조직력을 갖춘 곳이 기독교 말고 또 있느냐는 것. 어쨌거나 황 대표가 미래권력에 가까워진다면 그의 종교 문제 또한 검증과 국민적 판단 절차를 거치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보수 통합이다. 보수 통합이 됐든, 앞으로 지붕을 더 넓혀 중도-보수 통합이 됐든 황교안이란 상수(常數)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게 작금의 정치 지형이다. 그럼에도 황 대표가 여태껏 보여준 행보는 실망스럽다. 통합의 대의(大義)에 저항하는 당내 보신주의 세력에 때로 휘둘렸으며 답이 나와 있는 종로 지역구 출마를 두고도 머뭇거렸다.

이낙연이라는 여권의 우두머리 장수가 싸움을 걸어온 마당에 다른 지역구로 가거나 불출마를 선택했다면 어떤 말로 분식(粉飾)을 해도 ‘등 돌린 장수’ 소리를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장수가 나라의 명운(命運)이 걸린 4·15총선의 야당 사령관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명분 없는 일이다. 오늘의 대한민국 상황은 제1야당 지도자가 자신의 안위를 따지며 계산기를 두드릴 정도로 한가롭지 않다.

1000일도 지난 문재인 정권은 무슨 폐쇄회로에 갇힌 듯하다. △북한 공산정권은 선(善), 남한 보수정권은 악(惡) △중국은 선, 미국은 악 △노조는 선, 대기업은 악이라는 선악 이분법과 강남과 부동산은 악의 화신이라는 프레임에 빠져 다람쥐 쳇바퀴 같은 정책과 선동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무슨 짓을 해도, 심지어 실정법을 어겨도 무사할 거란 위험천만한 믿음에 빠졌다.

문 대통령부터 1000일 전이나 지금이나 바뀐 것도 없고, 바꿀 생각도 없는 듯하다. 그러니 대통령 주변에는 무능한 코드맨 예스맨만 포진해 ‘우리는 선(善)이다. 그러니 누가 뭐래도 우리가 하는 건 무조건 옳다’는 집단사고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폐쇄회로에 갇힌 세력의 집권이 길어지면 자칫 나라마저 자폐될 우려가 있다. 이럴 땐 밖에서 누군가 정권의 닫힌 문을 열어젖히고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어야 한다. 그 절호의 기회가 바로 이번 총선이다. 종로 출마로 야당의 사령탑이자 선봉장으로 나선 황교안. 과연 자신의 몸을 던져 폐쇄정권의 자물쇠를 부술 용기와 희생을 보여줄 수 있는가.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