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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사람 교섭했으니 물품과 사람을 보내주소서”

입력 | 2020-02-10 03:00:00

한인애국단원 최흥식 암호 편지 등 항일유산 자료 5건 문화재로 등록




최근 문화재로 등록된 한인애국단 최흥식의 편지와 봉투(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이교재를 경상도 대표로 임명한다는 ‘이교재 위임장’. 문화재청 제공

“선생님 앞. … 일전에 송금하신 200원은 영수하여 가지고 경영하는 일은 그래도 진행이 되어 가오며 … 이쪽에서는 뱃사람을 교섭하여 놓았사오니 곧 물품과 사람을 보내주시길 바라오며, 일자가 오래 걸리지 않도록 곧 회답하여 주시옵소서. … 5월 28일. 최흥식 상서(上書).”

1932년 청년 최흥식(1909∼1932)은 중국 다롄에서 상하이의 곽윤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마치 상인이 투자자에게 중간보고를 한 듯하지만 백범 김구 전집에 수록된 편지다.

수신자인 곽윤은 백범 김구의 가명이다. 최흥식은 김구가 일본 수뇌를 암살하고자 비밀리에 조직한 한인애국단에 1931년 가입했고, 일제의 관동군 사령관 혼조 시게루를 처단하기 위해 다롄에 잠복해 있다가 김구에게 이 편지를 보냈다. 보내달라는 ‘물품’은 거사용 폭탄, ‘사람’은 거사를 함께할 사람, ‘뱃사람’은 현지 조력자를 가리키는 암호였다. 거사 준비가 어느 정도 진행됐음을 보고하는 동시에 조속히 실행하자고 신호를 보냈던 것이다.

문화재청은 이 편지를 비롯한 ‘한인애국단원 편지 및 봉투’ 7점 등 모두 5건의 항일유산을 문화재로 최근 등록했다. 등록된 한인애국단원 편지 가운데는 김영구가 곽윤(김구)에게 보낸 것도 있다.

“선생님 … 입학참고서와 옥편은 구하였으나 … 입학은 … 자신을 하옵기에 … 대략 학비는….”

필적과 정황으로 보아 발신자 김영구는 한인애국단원 유상근(1910∼1945)으로 추정된다. 거사 실행을 ‘입학’으로, 거사용 폭탄과 권총 등을 ‘입학참고서’와 ‘옥편’으로, 거사 비용을 ‘학비’로 바꿔 쓴 것이다.

이와 함께 한인애국단 유상근, 이덕주(1909∼1935), 유진식(1912∼1966)의 ‘한인애국단원 이력서 및 봉투’ 6점도 문화재로 등록됐다. 문화재청은 “해당 유물은 대일 의열 투쟁 거사의 최일선에 나섰다가 체포된 청년 독립투사의 신상을 새롭게 밝혀줄 원본들”이라며 “한인애국단 활동은 비밀스럽게 전개됐기에 편지와 이력서는 매우 드물고 귀중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독립운동가 이교재(1887∼1933)가 임시정부를 방문하고 국내에 들여온 문서인 ‘대한민국임시정부 이교재 위임장 및 상해 격발(檄發·격문, 선언)’도 문화재로 등록됐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