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과 관련해 “과도한 불안과 공포로 위축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1주일 전인 3일 회의에서는 “상황은 이제 시작일지 모른다”고 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상준 정치부 기자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설 연휴가 시작되고, 확진 환자가 연이어 속출했지만 청와대는 여전히 연휴 모드였다. 세 번째 확진 환자가 나온 후인 지난달 26일에야 “정부를 믿고 과도한 불안을 갖지 말라”는 문 대통령의 메시지가 나왔다.
차분한 대응을 주문했던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이틀 뒤에는 확연히 달라진다. 지난달 28일 국립중앙의료원을 찾은 문 대통령은 “과하다 싶을 정도의 강력한 조치”를 지시한다. 비로소 청와대가 신종 코로나 총력 대응 모드로 접어든 것이다. 문 대통령은 4일 “사태가 장기화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해 우리 경제가 받을 충격과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치사율이 높지 않고 강력한 방역 대책 등으로 사태가 진정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청와대의 설명대로라면 신종 코로나는 보름 사이에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해야 했다가, 어느새 걱정하지 않아도 될 수준이 된 셈이지만 국민은 여전히 마스크를 벗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대통령의 메시지가 널뛰기식으로 나오는 데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설 연휴에 나왔던 ‘과도한 불안을 갖지 말라’는 메시지가 당시 국민의 불안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지극히 관료적인 형태로 나온 측면이 있다”고 토로했다. 대통령의 메시지는 참모들의 정확한 상황 진단과 예측을 기반으로 정제돼 나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의미다.
여기에 한 여당 의원은 “청와대 참모들이 대통령 개인기에만 기대는 현실이 이번 국면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참모들의 침묵 속에 문 대통령의 메시지만 도드라져 보이니, 국민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참모들의 신종 코로나 관련 독자 행보는 7일 김상조 정책실장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함께 기업인들을 만난 것이 유일하다. 그간 각종 방송 출연을 통해 남북 문제, 경제·부동산 이슈 등과 관련해 대통령 지원에 나섰던 청와대 참모들이 신종 코로나 국면에서는 거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청와대 표현대로 “방역의 최전방에서 정신없이 바쁜”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시간을 쪼개 라디오에 출연해 상황과 향후 대응 방향에 대해 소상히 설명한 것과 대조적이다.
목소리뿐만 아니라 손가락도 조용하다. ‘있는 그대로의 대한민국’을 보여주겠다며 개설한 노영민 비서실장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지난달 23일 이후 아무 게시물이 없다. 다른 참모들의 SNS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여름 한일 무역 갈등 당시 ‘이제는 지지 않겠다’류의 항일(抗日) 게시물로 SNS를 도배했던 것과 비교해보면 참 낯선 모습이다. 이를 두고 청와대 출신의 한 예비 후보조차 “하다못해 (SNS에) 손 씻는 법이라도 올릴 법한데…”라고 했다.
그 사이 신종 코로나는 이제 감염증 문제를 넘어 경제 쇼크로 치달을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신종 코로나 사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 후유증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첫 확진 환자 발생 이후 3주 넘게 지속된 청와대의 혼선과 침묵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
한상준 정치부 기자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