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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싸우지 말라[육동인의 業]〈32〉

입력 | 2020-02-11 03:00:00


육동인 강원대 초빙교수·직업학 박사

바둑 천재 이세돌 9단이 지난해 말 은퇴하면서 “알파고에 패한 것이 정말 아팠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누른 2016년은 인공지능(AI)에 대한 인식을 순식간에 바꿔 놓은 해였다. 이후 AI의 존재감은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개인적인 영역에선 일자리 문제다. AI가 내 일자리를 빼앗지는 않을까. 내 자식 세대에는 어떤 일자리가 유망할까. 게다가 요즘 취업준비생들은 AI 면접까지 봐야 한다. 가뜩이나 바늘구멍 같은 취업 시장에 허들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한숨만 푹푹 나온다. 누구도 정답을 말하긴 힘들다. AI가 가져올 일자리 변화에 대한 견해도 제각각이다. 아직은 장님 코끼리 만지는 수준이다. 그래도 직업전문가라는 오지랖에 코끼리 다리 한쪽을 만져본다.

먼저 AI 면접. 결론부터 말하면 유능한 인재가 AI 때문에 탈락하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이다. 현재 취업 시장에서 AI의 역할은 우수 인재 선별 기능보다는 채용 과정의 자동화와 공정성 강화 쪽에 가깝다. AI를 동원한 자기소개서 평가나 기초적인 면접을 통해 지원자의 20∼50%를 미리 걸러내면 비용과 시간이 크게 절약된다. 사람이 간여하지 않으니 불공정시비도 차단할 수 있다.

AI가 정말 필요한 인재를 찾아내려면 충분한 데이터에 근거한 분명한 이론이 필요하다. ‘면접 때 어떤 표정을 짓거나 말을 하는 사람이 결과적으로 일을 잘하더라’는 상관관계를 객관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은 충분치 못하다. AI가 최종 당락을 결정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다. 따라서 원하는 회사에 들어가고 싶으면 AI 면접 요령보다는 그 회사에서 요구하는 자질을 갖추는 게 당장은 더 중요하다.

다음은 미래의 일자리 전망. AI와 인간이 공존할 것이란 견해가 많다. 중요한 것은 공존의 방법. 논리가 중시되는 직종은 AI가, 감성이 요구되는 쪽은 사람이 우위를 보일 것이란 예상이다. 예를 들어 의료분야의 경우 의사들은 의료 데이터를 읽고 분석한 뒤 처방을 내리는 등 주로 논리적인 정보처리에 집중한다. 반면 간호사는 주사를 아프지 않게 놓고, 붕대도 깔끔하게 갈고, 난폭한 환자를 진정시키기 위한 감정 기술도 중시되는 직종이다. 의사가 간호사보다 훨씬 먼저 AI로 대체될 것이란 전망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노약자들이 병원 갈 때 동행해주는 서비스가 요즘 새로운 직업으로 떠오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라벡의 역설(Moravec’s Paradox)’은 여전히 작동하는 것 같다. 컴퓨터가 성인 지능 수준의 성과를 내는 것은 쉽지만 컴퓨터에 한 살짜리 어린아이의 스킬을 가르쳐 주는 것은 어렵다는 것. 결국 AI에게 어려운 일이 인간에게 유망하다는 말인데, 한마디로 감성에 방점을 둔 직업들이다. 타인을 돌보고 배려하는 마음, 설득과 협상의 기초인 공감, 예술의 원천인 독창성, 다양한 지식을 융합하는 직관력이 필요한 직종들이 각광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AI 시대에, 인문학 자연과학 등 교양 공부가 왜 점점 더 중요해지는지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육동인 강원대 초빙교수·직업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