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욱 영화평론가가 본 봉준호의 작품세계
봉준호 감독이 9일(현지 시간)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난 후 ‘기생충’으로 수상한 감독상과 국제영화상 트로피를 양손에 꼭 쥔 채 웃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P 뉴시스
정지욱 영화평론가
사회와 계급에 관한 관심은 봉 감독의 초기 작품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첫 작품인 단편 ‘백색인’(1993년)은 주인공 W가 길에서 우연히 잘린 손가락을 줍는 것으로 시작한다. 엘리트처럼 보였던 주인공의 이중적 모습을 통해 노사관계 산업재해 부당대우 문제를 비판한다. 1994년 연출한 ‘지리멸렬’은 역시 대학교수, 언론사 논설위원, 부장검사의 이중성을 세 개의 에피소드와 에필로그에 담았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옥자’ ‘설국열차’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 .
봉 감독의 상업성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에서 출발한 이야기와 어떤 어려운 순간에도 빠지지 않는 유머 코드가 이끌었다. 세 번째 작품 ‘괴물’(2006년)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한강에 등장한 괴물과 이에 맞서 싸우는 소시민 가족의 영웅적 모습은 흡사 ‘안티 히어로 영화’ 같았다. 그러나 결말은 평범한 가족의 재구성이었다.
2009년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공식 초청된 네 번째 작품 ‘마더’(2009년)는 세계의 영화인들이 봉 감독을 주목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그는 해외 평단의 긍정적 평가를 받은 이 작품을 발판으로 해외 배우와 스태프, 자본을 끌어들여 ‘설국열차’(2013년)와 ‘옥자’(2016년)를 만들어낸다. 이를 통해 해외 영화계로 본격 진출한다. 그럼에도 봉 감독은 계급과 환경 문제를 화두로 내건 두 영화에서 비판적인 시각을 잃지 않았다.
그가 다시 한국어만으로 작업한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의 쾌거를 안게 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봉 감독은 ‘봉테일’이라는 별명이 얘기하듯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치밀한 연출로 유명한데 결국 자신의 언어를 통해 자신이 갖고 있는 감정의 세세한 부분까지 표현해낼 수 있었다. 이런 면이 역사적인 수상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은 봉 감독에게도 성장으로 작용하겠지만 아카데미로서도 더 다양한 영화를 포섭하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영화라는 공통의 언어로 세계적 감독의 반열에 오른 봉 감독에게 박수를 보낸다.
정지욱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