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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안 MVP’ 떨친 박혜진 “도쿄서도 부담 없이 펄펄”

입력 | 2020-02-11 03:00:00

최종예선 맹활약, B조 ‘베스트5’
3경기 평균 12득점-4.7어시스트… 12년 만의 올림픽 코트 밟게 해
꼭 이겨야 했던 영국전서 진가, 월드컵 등 국제대회 부진 씻어




박혜진이 9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중국과의 국제농구연맹(FIBA) 2020 도쿄 올림픽 최종예선에서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이번 대회 3경기에서 평균 12득점을 기록한 박혜진은 B조 베스트5로 선정됐다. 작은 사진은 베스트5 상패를 받아든 박혜진. 베오그라드=AP 뉴시스

“국내용이라는 별명을 잘 알고 있다.”

한국 여자 농구 대표팀 가드 박혜진(30·우리은행)은 8일 국제농구연맹(FIBA) 2020 도쿄 올림픽 최종예선 영국전을 앞두고 무거운 속내를 드러냈다. 그는 “국제 대회마다 부진해서 그런 말을 듣고 있다. 오명을 벗으려 하기보다 욕심을 내려놓고 편하게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박혜진은 우리은행 6년 연속 통합 우승(2013∼2018년)의 주역으로 명실상부 한국 여자 농구 최고의 가드다.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를 4차례, 챔피언결정전 MVP를 3차례나 거머쥐었다. 하지만 2018년 FIBA 농구 월드컵과 지난해 9월 아시안컵 등 국제 대회에서는 침묵이 이어져 ‘국내용 선수’라는 오명을 써야 했다.

이번 최종예선 3경기에서 박혜진은 평균 12득점, 4.7어시스트, 3.3리바운드를 기록하는 맹활약으로 한국을 도쿄 올림픽 본선 무대에 올려놨다. 스페인(FIBA 랭킹 3위), 중국(8위), 영국(18위)과 함께 B조에 속한 한국은 1승 2패로 조 3위에 올라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12년 만에 올림픽 코트를 밟게 됐다. 대회 종료 후 박혜진은 B조 베스트5에 이름을 올렸다. 베스트5는 박혜진과 리멍(슈팅가드), 한쉬(센터·이상 중국), 알바 토렌스(스몰포워드·스페인), 테미 패그밴리(센터·영국)가 선정됐다.

박혜진의 진가는 한국이 유일한 승리를 거둔 8일 영국전에서 도드라졌다. 스페인과 중국에 객관적 전력에서 열세였던 한국은 영국전에서 반드시 이겨야 했다. 박혜진은 16득점 4리바운드 6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승리를 이끌었다. 그는 강이슬(26득점), 김단비(16득점)와 함께 40분을 모두 소화하면서도 지치지 않는 체력을 자랑했다. 다양한 루트를 활용한 돌파와 정확도 높은 3점슛으로 WKBL 무대에서 보여주던 기량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첫 경기였던 6일 스페인전에서도 박혜진은 팀이 46-83으로 고전한 가운데 17득점 4리바운드 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박혜진에게는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국제무대에 대한 부담감을 떨친 것이 큰 수확이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만큼 생애 처음 오르는 올림픽에서 자신의 기량을 한 단계 끌어올릴 것으로도 기대를 모으게 됐다.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은 “(박)혜진이가 재작년 나를 찾아와 ‘국가대표 안 나가게 해달라’고 하더라. 실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선수인데, 국제 대회만 다가오면 잠도 잘 못 잘 정도로 부담스러워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혜진이에게 ‘내려놓자’고 얘기했다. 어차피 국내용이라고 욕먹을 만큼 먹었으니 부담 갖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는 뜻이었다. 나도 마음을 졸이면서 지켜봤는데 잘해줘서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