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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Case Study] ‘도수 1도 낮추기’ 파격… 막걸리의 ‘지평’ 넓히다

입력 | 2020-02-12 03:00:00

매출 2억→230억… ‘동네 양조장’ 지평주조, 10년만에 메이저 된 비결




서울 송파구 오금로에 위치한 지평주조 서울사무소에서 김기환 지평주조 대표(왼쪽)와 전대일 경영전략본부장이 지평주조 막걸리를 소개하고 있다. 지평주조 제공

‘매출액 2억 원에서 230억 원으로 115배 성장, 직원 수 3명에서 45명으로 증가, 전통주 전문 소개 플랫폼 대동여주도 선정 2019년에 가장 많이 팔린 막걸리 1위.’

연매출 2억 원에 불과한 시골 동네 양조장에서 10년 사이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막걸리 브랜드로 성장한 지평주조는 ‘막걸리=허름한 뒷골목 선술집에서 싼 맛에 먹는 중장년층을 위한 술’이라는 편견을 깨고 2030 소비자들의 지지를 받으며 막걸리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떠올랐다. 특히 지평주조 막걸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힙(Hip)한 막걸리’ ‘병이 예쁜 막걸리’ ‘순하고 맛이 깔끔한 막걸리’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1925년에 설립돼 국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양조장임에도 수십 년 동안 동네 양조장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던 지평주조가 최근 10년 사이 메이저 막걸리 업체로 성장한 비결은 무엇일까.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90호(2월 1일자)에 실린 지평주조의 성장 비결을 요약해 소개한다.

○ 본연의 가치에 집중


지평주조의 중흥을 이끈 인물은 2010년 회사 대표이사로 취임한 김기환 씨다. 김 대표는 2010년 29세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았다. 어려서부터 집안의 막걸리 사업에 대한 관심과 자부심이 컸던 김 대표는 회사를 물려받은 후 과감하게 맛과 품질에 대한 투자를 시작했다. 2010년 당시만 해도 지평주조 막걸리는 맛은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일관성이 떨어졌고 생산량도 많지 않았다. 옛날 양조장에서 전통 방식으로 만들다 보니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이에 김 대표는 수도권 유통망을 어느 정도 다진 2015년부터 설비 투자를 통한 막걸리 생산 자동화를 시도한다. 또 2018년에는 꾸준히 늘어나는 생산량을 감당하기 위해 춘천에 2공장을 세워 월 500만 병을 제조할 수 있는 설비를 구축한다.

김 대표는 특히 2015년 지평 고유의 맛을 유지하기 위해 과감하게 막걸리 업계 최초로 5도짜리 ‘지평 생쌀막걸리’를 선보인다. 당시 막걸리의 도수를 내린다는 것은 상당히 파격적인 시도였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도수가 6도였기 때문이다. 지평주조가 5도짜리 지평 생쌀막걸리를 시장에 내놓자 “젊은 소비자들을 타깃으로 도수를 낮춘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그러나 지평주조가 막걸리의 도수를 내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지평 생막걸리는 5도일 때 가장 맛있다는 것을 수차례 시행착오 끝에 터득한 것이다. 전대일 지평주조 경영전략본부장은 “결과적으로 5도 막걸리가 젊은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은 것은 사실이지만 도수를 내린 이유는 가장 ‘지평다운 맛’을 찾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 전국 유통망 구축 전략


강원 춘천시 동춘천산업단지에 위치한 지평주조 춘천 제2공장에서 지평 생쌀막걸리가 생산되고 있다. 지평주조 제공

2010년 이후 지평주조가 눈부신 성장을 거듭한 배경에는 ‘대리점과의 상생 전략’도 큰 몫을 차지했다. 지평주조는 2010년 이후 수도권 동남부를 중심으로 조금씩 유통망을 확장했는데 이때 후발 주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대리점 마진을 높여주는 가격 정책을 썼다. 우선 제품을 준프리미엄 제품으로 포지셔닝해 대중적인 막걸리들보다 높은 가격을 받았고 프로모션 비용 등을 대리점에 전가하는 관행을 깨고 이 비용을 뺀 가격에 제품을 납품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시간이 지나면서 지평의 막걸리를 취급하면 이윤이 많이 남는다는 소문이 퍼졌고 이 덕분에 빠르게 유통망을 넓힐 수 있었다. 지평주조는 2018년 2월에 지평막걸리를 취급하는 75개 도매상을 구축해 전국 유통망을 완성했다. 2019년 말 기준으론 도매상 수가 91개까지 늘었다. 또 막걸리 제조사로는 드물게 2016년 대형마트에 입점했고 2018년부터는 편의점에도 납품을 시작해 전국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막걸리가 됐다.

○ 레트로 마케팅

김 대표는 지평주조 합류 전 홍보대행사에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꾸준히 지평주조의 브랜딩에 노력을 기울였다. 초기부터 양조장 한편에 지평주조 홍보관을 만들고 지평주조의 모습을 형상화한 로고와 영업 브로슈어를 제작하는 등 당시 회사의 상황이나 규모와는 맞지 않는 다양한 활동을 한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또 라벨 디자인에도 공을 들여 2010년 이후 수차례 라벨 디자인을 수정했다. 초기에는 오히려 현재 라벨 디자인보다 색깔도 화려하고 디자인도 젊은 느낌이 드는 라벨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지평주조는 전략을 수정해 브랜드의 오랜 역사를 라벨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 일단 서체 디자인을 파격적으로 바꿨다. 옛날 방식인 세로쓰기에 왼쪽으로 행갈이를 하는 우종서(右縱書) 형태로 라벨을 바꾸고 여기에 글씨체는 옛날 양조장 현판 글씨체를 사용했다. 또 ‘지평 생막걸리’라는 상표명 옆에는 지평 양조장 모습을 담은 그림을 넣어 고전미를 더했다. 젊은 세대 소비자를 잡는다면서 디자인은 예스럽게 바꾼 셈인데 마침 레트로 열풍과 함께 ‘예스러운 것이 멋스러운 것’이라는 트렌드와 맞아떨어졌다. 지평막걸리의 병 디자인은 이후 SNS 등에서 ‘예쁜 막걸리’로 인기를 끌게 됐다.

장재웅 기자 jwoong0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