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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난 딸-아들 방치 숨지자 암매장… 20대 부부, 아동수당까지 챙겼다

입력 | 2020-02-12 03:00:00

4년전 5개월 딸 모텔방치 사망… 신고 않고 할아버지 묘 옆에 묻어
2018년 낳은 아들 출생신고 안해… 집 비운새 숨지자 딸 옆에 매장
수년간 딸 양육-아동수당 수령… 만3세 아동 전수조사서 적발
5세 첫째 아들은 학대당한 정황




자신들이 낳은 갓난아기들을 모텔 등에 방치해 차례로 숨지게 하고 시신까지 산에다 묻은 20대 부모가 구속됐다. 이들은 아이가 사망한 뒤에 아동수당까지 신청해 받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강원 원주경찰서는 최근 아동학대 치사와 사체유기, 부정수급 혐의로 20대 중반 부부 A 씨와 B 씨를 구속했다. 경찰은 1월경 이들의 다섯 살 큰아들에 대한 아동학대 혐의로 부부를 조사하다가 이 같은 혐의까지 추가 확인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범죄는 4년 전인 2016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원주시 한 무인호텔에서 A 씨의 일용직 벌이로 생활하던 부부는 생후 5개월밖에 되지 않은 둘째 여아를 큰아들(당시 1세)과 함께 객실에 내버려뒀다가 되돌아와 둘째가 숨을 거뒀다는 걸 알았다.

동아일보가 찾아간 사건 현장은 무척이나 어둡고 침침했다. 13m²(약 4평) 남짓한 방엔 모텔 이름이 적힌 침대와 화장대, 소형 냉장고, 커피포트가 다였다. 하나뿐인 창문은 너비가 50cm도 되지 않았다. 이들 부부는 경찰에 “둘째 딸을 이불로 둘러놓고 나갔다 왔는데 딸이 이미 숨을 쉬지 않는 상태였다. 얼마나 오래 모텔을 비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그들은 당시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할아버지 묘가 있는 인근 야산에 시신을 묻었다.

이들의 범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똑같은 만행을 저질렀다. 2018년에 셋째 남아를 낳았지만 출생신고도 하지 않은 채 방치했다. 돌도 지나지 않은 셋째는 또다시 부부가 집을 비운 사이 세상을 떠났다. 이 부부는 둘째 아이를 묻었던 곳 바로 옆에 셋째 아이마저 파묻었다. 경찰은 부부의 자백을 토대로 주변을 수색해 시신을 찾았지만 이미 백골만 남은 상태였다고 한다.

두 아이의 죽음이 밝혀진 계기는 지난해 정부가 처음 실시한 ‘전국 만 3세(2015년생) 아동 소재·안전 전수조사’였다.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지난해 10월부터 올 1월까지 전국 만 3세 아동 44만3857명 가운데 2만9084명의 거주지를 일일이 방문해 안전을 확인했다. 어린이집(24만2939명)이나 유치원(16만628명)에 다니거나 해외에 체류하는 아동(1만1206명)은 일단 제외했다. 그런데 이 조사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끝내 소재를 찾을 수 없던 아이가 23명이었다. 마지막으로 경찰에 의뢰했는데 여기에 이 부부의 첫째 아들이 포함돼 있었다.

원주경찰서는 지난해 12월 10일 지자체의 의뢰를 받고 아이의 행방을 추적했다. 처음엔 난관이 많았다. 부부의 주민등록상 주소지였던 원주시 원룸에는 다른 사람이 살았다. 민방위에 등록한 남편의 휴대전화도 정지 상태였다. 결국 부부의 금융거래 명세를 조사하고 주변을 탐문한 끝에 모텔에 사는 부부와 첫째 아들을 찾아냈다.

경찰에 따르면 큰아들은 발견 당시 학대를 당한 정황이 뚜렷했다고 한다. 아이를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맡긴 뒤 부부를 긴급 체포했다. 부부는 경찰 조사에서 “아이들을 방임한 건 맞지만 구타 등 신체 학대를 한 적은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첫째를 보살피고 있는 기관 관계자는 “현재는 아이가 잘 지내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어떤 증상을 보일지 몰라 면밀히 관찰하고 있다”고 했다.

관할 행정복지센터 등에 따르면 이 부부는 2016년 방치로 숨진 둘째 딸 명의로 나오는 가정양육수당(월 10만∼20만 원)과 아동수당(월 10만 원)은 지난달까지 꼬박꼬박 받아 왔다. 심지어 아동수당은 둘째 딸이 숨진 뒤인 2018년 10월 부부가 직접 신청했다. 두 수당은 출생신고만 돼 있으면 지급하고 주거가 불명확해도 끊지 않는다. 당국은 둘째 딸이 숨진 뒤 이 부부가 부정 수급한 금액을 약 700만 원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선 이번 사건을 거울삼아 정부가 아동학대 조사 대상을 만 3세 아래까지 확대하고 출생신고 절차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부의 막내아들처럼 출생신고조차 하지 않은 아동은 현행 전수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아이가 태어난 병원이 지자체에 출생 사실을 통보하도록 가족관계등록법을 개정하면 그나마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다고 본다.

원주=이인모 imlee@donga.com·이소정 / 조건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