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결혼하려고 청첩장까지 만들어 놓았다. 고양이를 키우는 여자는 남자에게 테라스가 있는 집을 신혼집으로 계약하자고 제안한다. 빗방울이 창문에 대굴대굴 구르는 모습을 바라보기 좋아하는 고양이에게 비를 실제로 보여주며 살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런데 청첩장 봉투에 주소를 붙이는 작업을 할 때 사달이 난다. 남자가 무심코 열어놓은 문으로 고양이가 나간 것이다.
여자는 자기도 모르게 112를 누른다. 비현실적인 행동이지만 그만큼 절박한 심정에서다. 두 사람은 전단을 붙이고 고양이를 찾아보려고 하지만 소용이 없다. 여자는 지옥이라는 게 있다면 ‘키우던 고양이가 사라진 여기’가 지옥일 거라고 생각한다. 남자는 각자 부치기로 했던 청첩장을 여자 것까지 대신 우편으로 부쳐준다. 여자는 나중에 그걸 알고 고맙다고 말하지만 고마운 마음이 없다. 오히려 그 배려가 마음에 걸린다. 고양이가 사라진 후 자신이 뭘 했는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트라우마 상태였던 여자에게는 그러한 배려를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진짜 배려였을지 모른다. 남자와 달리 여자에게는 고양이가 애완동물이라기보다는 가족이다. 그 가족이 사라진 거다. 그러니 결혼은 나중 문제다. 결국 여자는 전셋집도 물리고 결혼도 물린다. 한 달 후에 고양이를 찾게 되지만 남자와의 관계는 과거의 일이 되었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