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에 움츠러든 경제
서울 동작구의 한 미용실 디자이너에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으로 영업에 타격이 있느냐는 질문을 하자 돌아온 답이다. 이 디자이너는 “매출이 30% 가까이 줄었다. 특히 여성 고객들이 미용실을 찾지 않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신종 코로나 사태가 연초부터 국내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쇼핑몰은 사람들의 발길이 유난히 뜸해졌다. 관광객이 넘쳐나던 서울 명동이나 제주도도 전에 없이 한산해졌다. 소비자는 지갑을 닫아 버렸고 기업과 자영업자들은 매출이 떨어져 울상이다.
○ 소비자 선택, 경제적 이익보다 생존본능에 가중치
‘전염병이 돌면 소비는 위축된다.’ 당연해 보이는 이 문장에는 사실 생존을 위한 인간의 본능이 반영돼 있다. 전문가들은 행동경제학에 나오는 ‘의사결정 가중치’라는 개념으로 이를 설명한다. 경제 주체들이 여러 선택지를 비교할 때 가치 있는 항목에 더 높은 가중치를 둔다는 것이다. 홍훈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당연하겠지만 인간은 재산이나 소득보다 생명과 관련된 선택지에 더 높은 가중치를 준다”고 설명했다. 항공권이 저렴해져도 여행을 가지 않고,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 아무리 세일을 해도 사람들은 새로운 병에 걸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가급적 외출을 피한다.
사람들이 느끼는 위협은 신종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더욱 높아지고 있다. ‘신종 전염병 발생→감염자 및 사망자 증가→중국 도시 폐쇄→한국 등으로 확산’으로 사태가 한 단계씩 악화될 때마다 사람들의 공포는 커지고 생존을 향한 본능도 더 빠르게 강화되는 쪽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에서도 처음에는 중국이나 동남아 관광을 자제하는 수준으로 대응했지만 이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로의 외출을 피하게 되고, 지금은 각종 모임이나 회식을 취소하는 단계까지 발전했다.
전염병과 관련된 각종 뉴스가 쏟아지면서 사람들의 ‘부정성 편향(Negativity effect)’도 작동하기 시작한다.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에 사람들의 관심이 본능적으로 더 쏠리는 것을 가리키는 심리학 용어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 발생 초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졌던 다수의 동영상, 생화학무기 관련설 등 괴담과 가짜뉴스가 뒤섞이면서 부정적인 정보가 더 부각되는 환경이 마련됐다. 반면 ‘완치자가 나왔다’ ‘신종 코로나는 중증 질환이 아니고 치사율도 낮다’는 긍정적인 정보는 사실임에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하고 있다. 결국 전염병이 돌면 공포심이 지나치게 확산되며 소비심리를 끌어내리는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 메르스 사태 학습 기업들, 위기 경영 극대화
롯데백화점은 신종 코로나 환자가 2일 서울 중구 본점을 약 1시간 동안 방문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7일부터 사흘간 임시 휴점을 했다. 하루 매출이 100억 원에 이르는 롯데백화점 본점이 방역을 위해 문을 닫은 건 1979년 이후 41년 만에 처음이었다. 롯데백화점 측은 “신종 코로나가 중국에서 확산될 때부터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감염자가 방문했을 때 실행할 시나리오를 준비해왔다”고 설명했다.
GS홈쇼핑도 직원 1명이 신종 코로나 확진을 받자 자발적으로 사옥을 폐쇄하고 사흘간 재방송을 진행했다. 영화관, 대형마트, 호텔 등도 감염자가 다녀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매출 하락을 감수하고 영업을 중단한 뒤 대규모 방역 작업을 했다. 이는 모두 보건당국의 지시가 아닌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한 조치다.
이로 인해 각 업체가 감수해야 할 매출 하락은 엄청나다. 사스, 메르스 사태 때보다 더 큰 손실을 입을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이런 선택을 주저 없이 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위기관리 전략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위기가 발생했을 때 평판을 관리하는 기업의 프로세스가 가동되고 있다. 이럴 때 돋보이는 대응을 하면 당장은 손실이 나더라도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물론 일각에서는 국내 기업들이 과도하게 대응함으로써 오히려 소비자의 불안감을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도 한다. 스타벅스, 이케아, 애플 등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 본토의 매장과 사무실을 닫았을 뿐 다른 국가의 기업이나 매장이 신종 코로나 감염 우려로 휴업을 한 사례는 아직까지 없다는 것이다.
요즘은 평판 관리를 기업뿐 아니라 일반 소비자들도 하고 있다. 혹시라도 자신이 감염자인 줄 모르고 잠복기에 대형 쇼핑몰 등을 휘젓고 돌아다니다가 ‘슈퍼 전파자’로 지목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 전염병 감염자를 향한 무분별한 비난과 신상털기 등에 대한 두려움도 경제 주체들의 심리를 위축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박한선 서울대 인류학과 박사는 “전염병이 돌면 처음에는 내가 감염될 수 있다는 불안 반응, 두 번째는 감염자나 집단을 향한 혐오 반응, 마지막에는 원인과 희생양을 찾는 세 가지 단계가 나타난다”며 “신종 코로나 사태를 맞아 한국 사회는 지금 두 번째 단계에 들어서 있다”고 진단했다.
○ ‘위축되지 말라’ 메시지 안 먹혀
이런 상황에서는 “안심해도 좋다”는 정부의 메시지가 제대로 먹힐 수가 없다. 정부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신종 코로나는 중증 질환이 아니며 치사율도 높지 않다” “실제보다 과도한 불안과 공포로 위축될 필요가 없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가계와 기업의 생존본능 때문에 이 같은 소비 침체 국면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더라도 경제 주체들의 심리가 정상으로 회복되기까지 1년 이상 걸릴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은 “불안이 증폭되면서 사람들은 극단적인 수비 자세를 취하고 있고 기업들은 글로벌 분업 구조가 흔들리면서 패닉에 처했다”며 “단기간 내 경제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재정 확대 같은 쉽고 단순한 단기 처방보다 경제 주체들의 심리를 회복시킬 수 있는 보다 정교한 접근법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번 사태가 쉽게 끝나지 않을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바이러스의 진원지인 중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커졌다는 점이다. 작년 말 기준 중국은 세계 인구의 18.1%(약 14억 명)가 몰려 있고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16.3%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3년 사스 때(4.3%)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블룸버그는 지난해 4분기(10∼12월) 전년 동기 대비 6.0% 성장했던 중국 경제가 올해 1분기는 신종 코로나 충격으로 4%대 성장에 그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심지어 최악의 경우 0%대로 주저앉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중국 경제의 부진이 길어질수록 한국이 받는 부정적 영향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이건혁 gun@donga.com / 세종=남건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