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오스카 역사 바꾸다] 거장 반열 올랐지만 여유-겸손-유머 잊지않아 “스코세이지에 경의” 오스카 최고의 소감 꼽혀 美언론 ‘Bongslide(봉준호+산사태)’ 신조어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이 관객들의 환호에 손을 흔드는 모습. 로스앤젤레스=AP 뉴시스
“봉준호!”
미국 연예매체인 버라이어티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자들의 소감 발표 중 최고를 꼽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에게 ‘The great(위대한)’를 붙이며 경의를 표한 봉준호 감독(51)의 수상 소감을 꼽은 답변이 50%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조커’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호아킨 피닉스가 27%,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브래드 피트가 15%로 뒤를 이었다.
봉 감독에 대한 팬덤을 벌집에 모인 벌 떼에 빗댄 ‘봉하이브(hive·벌집)’ 현상이 갈수록 거세게 번지고 있다. 외국어로 제작된 영화 중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봉 감독은 거장의 반열에 올랐지만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한 여유와 유머 감각, 다른 감독들에 대한 오마주(경의)가 전 세계를 홀린 것이다. 봉 감독이 감독상 수상 후 ‘우상’이라고 수차례 밝혀 왔던 스코세이지 감독의 명언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를 인용하며 존경을 표한 장면은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 중 가장 감동적인 순간으로 꼽힌다.
외신들도 봉 감독의 수상 소감을 ‘최고의 소감(Best Speech)’으로 꼽으며 그의 겸손과 유머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미국 매체 ‘디 애틀랜틱’은 10일 ‘오스카에서의 최고의 소감’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봉 감독의 ‘shout-out(공개적인 칭찬)’에 스코세이지 감독도 웃음과 미소로 화답했다”며 “다른 여러 수상자들도 후보자들을 언급하긴 했지만 봉 감독의 소감이 가장 진실됐고 마음을 울렸다. 생방송으로 이를 지켜본 사람들에게 전율을 선사했다”고 평했다. 미국 매체 ‘타임’은 오스카 최고의 순간 중 하나로 ‘무대에서 유쾌했던 봉 감독(Delightful presence onstage)’을 꼽았다.
무대 밑 사석에서 배우들과 재치 있게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도 화제가 됐다. 시상식이 끝난 후 트로피에 수상자 이름을 새겨 주는 곳에서 ‘주디’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러네이 젤위거가 봉 감독이 든 트로피 4개를 가리키며 “그게 다예요?”라고 농담을 던지자 봉 감독은 웃으면서 “너무 많죠? 미안해요”라며 유머 있게 받아쳤다.
○ 수상 소감 딴 트윗 봇물
수상 소감으로 “다음 날 아침까지 술을 먹고 싶다”고 한 봉 감독과 기생충 팀은 시상식 후 인근의 한국식당에서 새벽 5시까지 뒤풀이를 하며 자축했다. 소반 인스타그램
오스카의 밤에서 봉 감독의 모습을 담은 짧은 영상도 큰 인기다. 각본상 수상 후 한진원 작가 뒤에서 트로피를 두 손으로 쥐고 빤히 바라보던 봉 감독이 해맑게 웃음을 터뜨리는 짧은 동영상을 공유한 트위터 게시물에는 15만 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뒤 만들어진 봉하이브에 이어 여러 유행어도 탄생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기생충의 압도적인 수상을 ‘landslide(산사태)’에 빗대 봉 감독의 성과 합친 ‘Bongslide’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버라이어티는 ‘Parasite(기생충)’와 ‘Sweep(쓸어버리다)’라는 단어를 합친 ‘Parasweep’라는 신조어를 썼다.
봉 감독의 수상 소감 장면에 대한 ‘리액션’ 유튜브 비디오도 올라오고 있다. 통상 리액션 비디오는 뮤직비디오나 영화, 드라마 등 예고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담는데 이례적으로 수상 소감에 대한 리액션 비디오가 등장한 것이다. 봉 감독이 스코세이지 감독에게 헌사를 바치는 장면을 본 외국인들이 “평소에 잘 안 우는데 너무 감동적이다”라며 눈물을 흘리는 동영상은 하룻밤 사이 조회수 14만 회를 기록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