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오스카 역사 바꾸다]
영화 ‘기생충’에 등장하는 박 사장 가족의 대저택(왼쪽 사진)과 기택 가족이 사는 반지하 주택 속 화장실. 제작진의 치밀한 계산과 준비를 거친 대저택과 반지하방 세트에 세계 영화계는 찬사를 보냈다. CJ 엔터테인먼트 제공
복숭아 알레르기 장면 ‘백미’… 극중 긴장감 최고조로 끌어올려
직접 디자인한 저택 해외서 깜짝… 미국 미술감독조합상 받아
홍경표 촬영감독
‘버닝’ ‘기생충’으로 2년연속 칸行… 작년 美예술아카데미 회원 위촉
CGV 전국 32개 영화관서 할인전… 북미 상영관 수 2000개로 배 늘어
“우리의 위대한 촬영감독 홍경표, 미술감독 이하준, 편집감독 양진모 등 최고의 모든 예술가들에게 찬사를 보냅니다.”(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의 쾌거 뒤에는 이들의 손이 있었다. 봉준호 감독은 제92회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수상 소감에서 ‘봉준호의 퍼펫들’로 불리는 제작진의 이름을 빼놓지 않았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편집상 미술상 부문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세계가 그 실력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평론가들도 정교한 세트와 생동감 있는 편집, 촬영기술, 음악을 선보인 ‘기생충의 A급 앙상블’에 호평을 쏟아내고 있다.
‘늘어진다’는 말을 가장 싫어한다는 양진모 편집감독은 리듬, 타이밍, 음악을 절묘하게 조합해 팽팽한 긴장감을 높이는 편집을 주로 선보인다. ‘기생충’에서는 기택 가족이 가정부 문광을 쫓아내고, 박 사장 집에 입성하는 장면이 백미로 꼽힌다. 문광의 복숭아 알레르기로 인해 결정적 해고 사유가 만들어진 대목이다. 양 감독은 “이 장면 편집에 가장 공을 들였고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모든 촬영분을 조합해 장면의 리듬을 완성하려 했다”고 밝혔다.
‘믿음의 벨트’ 장면으로 불리는 이 시퀀스에서 약 8분 동안 이어지는 동명의 주제곡은 정재일 음악감독이 작곡했다. 정 감독은 “이 장면에서 봉준호 감독이 일곱 번이나 퇴짜를 놨다. 애니메이션 ‘톰과 제리’를 떠올리며 곡을 완성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으로 위촉된 홍경표 촬영감독은 이미 해외에서도 인정한 베테랑이다. ‘설국열차’ ‘마더’ 등에서 일찌감치 봉 감독과 호흡을 맞췄으며 ‘곡성’ ‘국가대표2’ 등을 작업했다. ‘버닝’과 ‘기생충’으로 2년 연속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다. 반지하 주택 창문 밖에서 집 안을 비추는 한 줄기 빛과 대저택 거실 통유리로 쏟아지는 빛이 상징적으로 이들의 현실을 비춘다.
‘기생충’이 오스카상을 석권하면서 국내 상영관도 재개봉, 할인 행사 등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CGV는 25일까지 ‘기생충 특별전’을 연다. 서울 13곳, 경기 5곳, 인천 2곳 등 전국 총 32개 영화관이다. 이 기간에는 할인된 가격인 7000원으로 예매할 수 있다. 기생충의 흑백판도 상영한다. 평소 고전 흑백영화에 로망을 품고 있던 봉 감독과 홍 촬영감독이 한 장면씩 대조하고 톤을 조절한 흑백판은 팬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북미 지역 상영관도 크게 늘어난다. 기생충의 북미 배급사 ‘네온’은 현재 1060개인 상영관을 이번 주말 2000개 이상으로 늘릴 예정이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으면 매출이 20% 안팎으로 오르는 점을 고려하면, 관객은 한층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현재까지 기생충이 거둔 수익 3553만 달러(약 421억 원)는 이 지역 모든 비영어 영화 가운데 6위다.
7일 영화가 처음 개봉한 영국에서도 흥행은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첫 주말에만 약 140만 파운드(약 21억4000만 원)의 수익을 올린 기생충은 비영어 영화 중 오프닝 성적이 최고다. 영국 배급사 커즌은 상영관을 136개에서 400개 이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기생충은 유럽, 남미, 오세아니아, 아시아, 중동 202개국에 판매됐고 총 67개국에서 개봉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