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민주당 뉴햄프셔 예비선거
패배 설욕 ‘강경 진보’… 숨 고르기 ‘온건 진보’… 급격 부상 ‘중도 실용’ 11일 미국 민주당의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두 번째 경선인 뉴햄프셔 예비선거(프라이머리)에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피트 부티지지 전 사우스벤드 시장,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이 각각 1, 2, 3위를 차지했다. 3일 아이오와 당원대회(코커스)에 이어 이날도 샌더스 의원과 부티지지 전 시장은 근소한 표차로 1, 2위를 주고받았다. 아이오와 때 5위였던 클로버샤 의원은 이날 20% 가까운 득표율을 기록하며 선거 판세를 흔들 다크호스로 급부상했다. 맨체스터·내슈아·콩코드=AP 뉴시스
○ 샌더스 vs 부티지지 초접전
CNN에 따르면 11일 민주당의 두 번째 경선인 뉴햄프셔 예비선거(프라이머리)에서 샌더스 후보는 25.9%로 부티지지 후보(24.4%)에게 신승했다. 3일 아이오와 당원대회(코커스)에서는 부티지지가 샌더스를 0.1%포인트 차로 이겼다. 1승 1패씩 주고받은 셈이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샌더스 후보는 1981년 정계 입문 이후 약 40년간 무상 의료 및 교육 공약을 고수하고 있다. 양극화에 지친 청년들이 열광적으로 그를 지지한다. 이날 WP 조사에서 30세 미만 유권자 중 51%가 “샌더스를 찍었다”고 했다. 20%인 부티지지의 2.5배가 넘는다.
천문학적인 재원이 필요한 그의 공약을 두고 좌파 대중영합주의자(포퓰리스트)란 비난도 끊이지 않는다. 중도층 포섭이 어려워 본선 경쟁력도 의문이다. 후보자 중 최고령인 데다 지난해 심장수술을 받아 건강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4년 전 뉴햄프셔 경선에서 60.1%를 얻어 2위를 22%포인트 차로 앞섰던 그가 이번엔 불과 1.5%포인트 차로 1위를 했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고소득·고학력자가 선호하는 ‘백인 오바마’ 부티지지 후보는 하버드대 졸업 등 ‘엄친아’ 이미지, 뛰어난 연설 능력, 아프가니스탄전 복무 경험, 노회한 워싱턴 정가에 물들지 않은 신선한 이미지가 강점이다. 하지만 성소수자인 탓에 민주당의 전통 지지 기반인 흑인 및 히스패닉 유권자를 사로잡기 힘들고 샌더스와 마찬가지로 본선 경쟁력이 의문이란 지적을 받는다. 개신교도 흑인과 라틴계 가톨릭은 가족과 이성 결혼의 가치를 중시한다.
○ 백인 여성 지지 클로버샤 깜짝 3위
슬로베니아 이민자 후손인 그는 예일대와 시카고대 로스쿨을 졸업한 검사 출신 3선(選) 의원이다. 변호사 남편과 딸 하나를 두고 있다. 원자력 발전을 지지하고 무상 의료를 반대하는 실용 노선을 추구한다. 이념, 나이, 성적(性的) 취향 등에서 큰 약점을 찾아보기 어려운 후보로 꼽힌다. 지난달 최대 유력지 뉴욕타임스(NYT)는 ‘분열에 빠진 민주당과 미국 전체를 통합할 수 있다’며 그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그는 7일 TV 토론에서도 인상적인 말솜씨를 선보였다. CNN은 아이오와 때 깜짝 1위를 한 부티지지에 빗대어 “제2의 부티지지가 탄생했다”고 평했다. 고령층, 백인 여성, 기독교도의 지지가 높다.
클로버샤 후보의 지역구인 미네소타, 이웃 위스콘신은 대선 판세를 좌우하는 핵심 경합지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텃밭이었던 위스콘신은 대선 결과를 좌우하는 538명의 선거인단 중 10명이 걸린 지역이다. 4년 전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위스콘신의 승리를 자신해 유세 중 이곳을 찾지 않았다. 결국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위스콘신을 가져갔고 백악관에도 입성했다.
부티지지와 클로버샤 후보의 선전은 민주당 중도층의 표심이 흔들리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경선 시작 전 온건 진보 성향, 높은 대중적 인지도 등으로 트럼프 대통령과의 본선에서 선전할 것으로 평가됐던 바이든 전 부통령의 지지표가 비슷한 노선의 부티지지, 클로버샤 후보에게 분산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음 달 3일은 선거인단 수 1, 2위인 뉴욕(55명), 텍사스(38명) 등 무려 14개 주의 경선이 동시에 치러지는 ‘슈퍼 화요일’이다. 억만장자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은 이날부터 경선에 합류한다. 역시 온건 진보 성향인 블룸버그의 가세로 중도 표 확보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4월 출마 발표 후 최근까지 민주당 후보 중 독보적인 전국 지지율 1위를 기록했던 바이든 전 부통령은 이날 5위로 밀렸다. 아이오와(4위)보다 더 나쁘다. 그는 부통령 8년과 상원의원 36년의 경력, 가족 가치를 중시하는 가톨릭임을 내세워 흑인 및 라틴계 지지를 얻었다. 중도 유권자를 사로잡을 사람은 자신뿐이라며 본선 경쟁력을 자신해왔다. 하지만 노회한 이미지, 그와 외아들 헌터의 우크라이나 스캔들 연루 의혹, 성·인종 차별에 관한 각종 구설수 등이 악재로 작용해 2번의 경선에서 모두 참패했다.
바이든 캠프 측은 아이오와와 뉴햄프셔의 백인 비율이 모두 90%를 넘는다는 점을 들어 “미국의 다양성을 대표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1992년 경선 당시 첫 11개 주에서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며 “초반 승부는 중요치 않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회의론이 확산되고 있어 만회를 장담하기 어렵다. 이날 몬머스대가 공개한 전국 여론조사에서 바이든의 지지율은 지난달 30%의 절반인 16%에 그쳤다. 그는 뉴햄프셔 투표가 끝나자마자 지지자들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은 채 29일 경선이 치러지는 남부 사우스캐롤라이나로 이동했다. 흑인 인구가 많은 주에서 사활을 걸겠다는 전략이다.
뉴햄프셔 인근 매사추세츠에서 재선 상원의원을 지낸 워런 후보도 4위에 그쳤다. 역시 아이오와보다 한 계단 낮다. WP는 “워런이 판세를 뒤집을 만한 지역이 없다”고 지적했다. 유일한 아시아계 후보였던 대만계 기업인 앤드루 양(45), 마이클 베넷 상원의원(56·콜로라도)은 저조한 지지율로 이날 중도 사퇴했다. 집권 공화당 후보 선출이 확정적인 트럼프 대통령은 아이오와와 마찬가지로 뉴햄프셔에서도 손쉽게 1위를 차지했다.
맨체스터·콩코드=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 김예윤·최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