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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심아동 파악하고도… 실제 방문조사 10명중 1명밖에 안돼

입력 | 2020-02-13 03:00:00

구멍난 위기아동 경보망
건보료 체납-예방접종 미실시 등… 41개 정보중 1개라도 걸리면 대상
그중 위험도 높은 아동 선별해 방문… 거주 않거나 외출중이면 허탕
복지센터 “한 직원이 수십개 업무… 의심가정 두세번 찾을 여력 없어”




우리나라에 위기아동 경보망을 도입한 결정적 계기는 2016년 3월 ‘원영이 사건’이었다. 신원영 군(당시 7세)은 계모에게 몇 년간 구타 및 화장실 감금 등 학대를 당하다 끝내 숨진 뒤 경기 평택시에 있는 한 야산에 암매장됐다. 이때부터 사후 처벌로는 학대받는 아동을 구할 수 없다는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정부는 2017년 시범사업을 거쳐 2018년 3월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시스템은 위기에 처했다고 의심되는 아이들을 선제적으로 찾아내는 게 핵심이다. 공적 정보 41종에 따라 영·유아 건강검진 혹은 예방접종을 빼먹거나 생활요금을 내지 못하는 등 41가지 기준에 하나라도 부합하는 아동을 1차적으로 분류한다. 이 가운데 방문조사로 이어진 아동 가운데 62명이 학대를 당한 것으로 밝혀져 경찰 등에 인계됐다. 3741명은 학대는 아니었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이 드러나 복지 서비스의 도움을 받았다.

문제는 위기 의심 아동 가운데 이러한 실제 방문조사로 이어진 비율이 10%를 겨우 넘는다는 점이다. 첫 번째 관문은 ‘위험도 평가’다. 41가지 기준으로 1차 분류한 위기 의심 아동은 70여만 명이다. 그런데 정부는 전수조사가 역부족이란 판단 아래 정해둔 가중치에 따라 위험도를 평가한다. 평균적으로 41종에 많이 해당할수록 위험도가 높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일부 아동만 분기마다 대상으로 선별해 관할 읍면동에 통지한다. e아동행복지원 시스템 도입 뒤 지난해 6월까지 방문조사 대상에 오른 아동은 10만2554명뿐이다.

나머지 약 60만 명은 위험도가 낮다고 방문조사에서 빠졌지만 실제로는 당국의 개입이 절실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11일 세간에 드러난, 강원 원주시 한 모텔에서 방치되다 생후 5개월에 목숨을 잃은 황모 양이 대표적이다. 황 양은 만 6세 이전 모두 7차례 이뤄지는 영·유아 건강검진을 딱 한 번 받았지만 방문조사 대상에 들지 못했다. 지난해 8월 서울 관악구 봉천동 한 임대아파트에서 탈북자 어머니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된 김모 군(당시 6세)도 위기 의심 아동이었지만 위험도 평가에서 밀려 방문조사 대상에 오르지 못했다.


방문조사 대상에 들더라도 두 번째 관문이 기다린다. 담당 공무원이 방문했지만 아이가 주민등록상 거주지에 살지 않거나 가족이 장기간 외출하는 바람에 점검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원칙적으로는 재방문해야 하지만 현장 일손이 부족해 3∼6개월 뒤로 미뤄지곤 한다. 부모만 행정복지센터로 불러 조사를 갈음하는 사례도 허다하다. 이처럼 실제 점검을 못한 방문조사 대상 아동도 1만4038명이다. 원주시 한 복지공무원은 “우리 행정복지센터엔 위기아동 담당 직원이 1명뿐이다. 게다가 수십 가지 업무를 동시에 맡아 (의심 아동) 가정에 두세 번 방문할 여력이 없다”고 토로했다.

이참에 위기아동 경보망을 더 촘촘하게 손보고 분석법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테면 현재 41종의 위기 의심 기준엔 국가예방접종 미실시 기록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생후 12개월 이전 한 번이라도 접종한 아이는 36개월까지 이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다. 방문조사에 강제성을 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부모가 방문조사를 거부하거나 집을 장기간 비우면 아동수당이나 가정양육수당 지급을 중단하는 방법도 고려할 만하다.

조건희 becom@donga.com / 원주=이인모·이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