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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술이냐, 철학이냐… 아이돌 그룹 ‘세계관 전쟁’

입력 | 2020-02-13 03:00:00

BTS-여자친구-펜타곤 등 앨범서 철학책-우주다큐 같은 제목 유행
아이돌 백가쟁명 시대 차별화 효과
팬덤 관리-사회적 메시지 넘어 자신의 예술관 발전시켜 나가야




방탄소년단이 21일 ‘MAP OF THE SOUL : 7’ 앨범 발매에 앞서 12일 공개한 세 번째 콘셉트 포토. 멤버들이 음식이 가득한 식탁에 앉아 의미심장한 눈빛을 쏘고 있다. 전문가들은 방탄소년단이 아이돌 업계의 세계관 열풍에 불을 붙였다고 평가한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回: Labyrinth’ ‘UNIVERSE: THE BLACK HALL’ ‘Dystopia: The Tree of Language’ ‘MAP OF THE SOUL : 7’….

무슨 철학 서적이나 우주 다큐멘터리 제목처럼 보인다. 하지만 각각 아이돌 그룹 ‘여자친구’ ‘펜타곤’ ‘드림캐쳐’ ‘방탄소년단’의 최근 앨범 제목이다. 아이돌 그룹의 ‘세계관 전쟁’이 심화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팬들의 해석과 2차 콘텐츠 생산을 독려하는 이른바 ‘떡밥’이나 상술이라는 의견과 함께 차별화를 위한 피나는 고민의 산물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 줄거리와 시각적 콘셉트의 합

‘191231’.

지난해 말 가수 아이유가 컴백할 때 팬들 사이에 화제가 된 숫자다. 2011년 발표한 ‘너랑 나’의 뮤직비디오에서 타임머신의 시계가 ‘191231’에서 멈추는 장면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일부 팬은 이 숫자를 8년간이나 기억하고 있다가 2019년에서 2020년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다시 꺼냈다. 아이유 측은 실제로 지난해 미니 5집 티저 영상 이름을 ‘시간의 바깥’으로 짓고 ‘너랑 나’ 때 함께한 작곡가 영상감독 배우를 다시 기용했다. 8년 전 뮤직비디오라는 타임캡슐에 묻은 세계관이 되살아난 것이다.

그룹 여자친구의 ‘回:LABYRINTH’(3일 발매), 펜타곤의 ‘UNIVERSE: THE BLACK HALL’(12일 발매), 드림캐쳐의 ‘Dystopia: The Tree of Language’(18일 발매) 관련 이미지(위부터). 쏘스뮤직·큐브엔터테인먼트·드림캐쳐컴퍼니 제공

‘자연적 세계 및 인간 세계를 이루는 인생의 의의나 가치에 관한 통일적인 견해.’

세계관에 대한 국어사전의 정의다. 가요 전문가들은 아이돌 세계에서 통용되는 세계관을 견해라기보다는 ‘가수나 그룹이 지닌 연속성 있는 스토리나 설정’의 다른 말로 본다. 2011년 데뷔한 그룹 ‘엑소’를 세계관의 시초로 꼽는다. 엑소는 ‘엑소플래닛(태양계 밖 행성)’에서 각기 다른 초능력을 갖고 온 12명의 외계인을 배경 스토리로 삼았다. 미묘 ‘아이돌로지’ 편집장은 “엑소는 세계관을 전면적이고 본격적으로 사용한 첫 사례”라면서 “당시만 해도 일종의 기믹(gimmick·장치)처럼 받아들여졌지만 방탄소년단이 ‘화양연화’ 앨범 시리즈를 통해 대중적 폭발력을 입증하자 아이돌 세계에서 일반화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세계관 구축은 아이돌에게 다방면으로 효과적이다. 시각적 이미지의 통일성 확립, 연작 앨범 발매를 통한 팬덤 충성도 제고와 수익 극대화, 아이돌 백가쟁명 시대에 콘셉트 차별화 가능 등이다. 연애의 설렘, 이별 같은 가사만 반복하다 피로감만 안기기 쉬운 대중가요의 딜레마를 극복하려는 시도로도 풀이된다.

○ “가수 개개인의 예술관도 함께 고민해야”

그룹 ‘SF9’은 지난달 낸 첫 정규앨범 ‘FIRST COLLECTION’에 세계관을 담아 성과를 냈다. 멤버 숫자(9명)와 발전상을 접목한 ‘9logy(영광)’를 내세웠다. 소속사 FNC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좋은 음악만 중구난방 내놓아서는 팬들의 관심을 받기 어렵게 된 시장 상황도 있다. 그룹이 추구하는 가치관을 먼저 제시하면 주목도를 높일 수 있다”고 했다.

엑소와 방탄소년단이 가요계 밀리언셀러 시대를 다시 연 뒤 CD 판매가 늘었고 기획사들은 세계관과 연작을 통한 일종의 묶음 전략으로 가속도를 붙이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독특한 세계관을 잘 활용한 팀으로 드림캐쳐(2017년 데뷔)를 꼽는다. 강렬한 록 사운드와 거기에 어울리는 어두운 SF 판타지 콘셉트를 추구했다. 앨범으로 ‘악몽 시리즈’를 풀어냈다. 음악과 영상에 숨은 메시지를 게임처럼 찾는 이들이 늘며 해외 팬덤이 성장했다. ‘악몽 시리즈’ 종료와 ‘디스토피아’ 시리즈 개시를 선언하자 팬덤이 먼저 움직인다. 드림캐쳐 측이 알파벳 형태로 공개한 ‘미스터리 코드’를 추리소설 속 암호처럼 풀고 있다.

이주원 드림캐쳐컴퍼니 대표는 “‘악몽’ 때부터 사랑과 이별 아닌 다른 이야기를 다룬 만큼 디스토피아 시리즈에서는 언어폭력을 비롯한 사회문제를 더 다뤄볼 생각”이라고 했다.

세계관은 팬들에게 다양한 재미를 주고 사회적 메시지도 던지지만 이제 그 너머를 생각할 때가 됐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현준 음악평론가는 “아이돌 가운데는 10대부터 20대 초반까지 앞만 보고 달리다 정작 음악가로서 좌표를 잃어버리는 이들이 많다. 세계관이 ‘포장’이나 상술에 그치지 않고 가수 자신의 예술관을 고민하는 쪽으로 함께 발전해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