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찬 정치부 차장
지금 와서 보면 북한이 당시 ‘할리우드 액션’을 펼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최근 발표된 2019년 한 해 북한의 무역 통계를 보면 그렇다.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북-중 무역 규모는 지난해 27억8901만 달러로 전년보다 약 15% 늘었다.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금액은 25억7382만 달러로 전년보다 16% 늘었고, 북한의 대중 수출도 2억1519만 달러로 전년보다 1% 성장했다. 제재는 하나도 풀리지 않았는데 북한 무역은 활발해진 것이다.
이런 까닭에 2018년 기준으로 20억∼60억 달러로 추정됐던 북한 외환보유액에 대한 추정이 잘못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당장 나온다. 숨겨놓은 뒷돈이 더 많았던 게 아니냐는 것이다. 한편에선 북한이 외화 곳간을 바닥까지 긁으며 ‘최후 버티기’에 나섰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무엇보다 북-중 밀무역이 광범위하게 성행 중인 게 아니냐는 의심이 커지고 있다. 북한이 밀무역을 통해 번 돈으로 중국에 무역 대금을 치른다는 것이다. 당장 유엔은 북한이 지난해 1∼8월 3억7000만 달러어치의 석탄을 불법 수출했다는 보고서를 3월 공개할 예정이다. 여기에 암호화폐 채굴이나 해킹 등 ‘신종 외화벌이’에 북한이 몰두하고 있다는 정황도 끊이지 않고 있다. 결국 김 위원장이 올해 초 정면돌파전을 선언한 것도 이렇게 현재 대북 제재 아래서 장기적으로 버틸 수 있다는 그 나름의 셈법이 끝났기 때문이란 말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 전까지 3차 북-미 회담을 열지 않겠다고 밝혔다는 보도가 나오며 북-미 협상은 급격히 힘이 빠지는 모양새다. 그러나 북한이 제재 아래 생존법을 찾는다면 향후 대화 재개의 문턱을 한층 더 높일 가능성이 크다.
그간 대북 제재는 북한을 대화로 이끄는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북한이 대화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다면 새로운 경협 제안보다는 기존 대북 제재에 구멍은 없는지, 북한이 찾은 제재 우회로가 무엇인지 먼저 점검해 봐야 한다. 대북 제재가 실효성을 잃는다면 ‘완전한 비핵화’는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
황인찬 정치부 차장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