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 NK News 팟캐스트 호스트
아시다시피 ‘작은 일’을 볼 때 서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남자로서 갖는 특권 중 하나다. 좁은 칸에 들어가서 바지를 내리고 앉으면서 휴지가 있는지 없는지 걱정해야 하는 복잡한 절차를 피할 수 있다. 하지만 단점은 소변기 사이에 운이 없게도 칸막이가 없는 경우 양쪽 사람이 아주 가깝게 서서 프라이버시가 없는 듯 볼일을 봐야 하는 경우도 있다.(그럴 때 나는 ‘무대공포증’이 나서 일부러 변기 칸에 들어가는 것을 택한다.)
최근 나는 남자 화장실에서 ‘작은 일’을 보다가 생전 처음 보는 것을 봤다. ‘아, 이제 볼 것 다 봤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문제는 그 사람의 스마트폰이 소변기 위 벽면에 기대어 세워져 있었다는 것이다. 난 완전한 결벽증은 아니지만 위생을 중시하는 사람으로 그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가끔 화장실에 갔을 때 옆 칸에서 통화하는 소리가 나는 경우도 있다. 그것도 나에겐 약간 좋지 않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 옆 사람의 스마트폰 화면에서는 뭔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아니,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서 동영상이라도 본단 말이야? 나는 나도 모르게 곁눈질로 계속 몰래 훔쳐보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본 것은 동영상이 아니고 스마트폰 소유자의 모습과 화장실 배경이었다. 순간 나는 ‘이 사람은 자기의 모습을 보면서 볼일을 보는 사람인가? 변태인가?’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화면이 바뀌었다. 화면에서 스마트폰 소유자의 모습이 갑자기 작아지면서 맨 위 왼쪽 구석으로 옮겨지더니 다른 사람의 얼굴이 메인 이미지에 떴다. 아하, 화상 통화를 시작했구나!(스마트폰 화면에 다른 사람의 얼굴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내 옆에 있는 사람만 화면에 있었다. 그걸 보면 그 사람은 전화를 걸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이 상황이 어떻게 이어질까 너무나 궁금했다. 설마 일을 보면서 대화까지 하는 거야? 그 사람은 말을 하지 않고 손동작으로 뭔가를 말하는 듯했다. 그것도 소변기 앞에서. 나는 아마 그가 청각장애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볼일을 다 봤으니까 손을 씻으러 세면대로 걸어갔다. 거기서도 거울로 그 사람의 모습을 얼핏 볼 수 있었다. 내가 청각장애인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스마트폰으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청각장애인이 아니구먼. 내가 더 이상 옆에 있지 않아서 말을 할 수 있는 여유를 느꼈을까? 모르겠다. 도대체 어떤 대화를 이어 나갈지 궁금했지만 내겐 기다리는 친구가 있었으니 공중화장실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내게 남은 궁금증은 ‘무슨 통화이기에 화장실에 가서 스마트폰을 소변기 위에 세워놓고 볼일을 보면서 해야 할 만큼 중요했을까’이다. 그 사람은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마치 작년 겨울 내가 남자 화장실이 꽉 찬 탓에, 그리고 너무 볼일이 급했던 탓에 어쩔 수 없이 여자 화장실을 사용한 것만큼 절실한 이유가 있었겠지.
하지만 그 사람이 이 블로그를 읽고 있다면 한 가지 권하고 싶다. 공중화장실을 방문할 때, 특히 서서 소변기를 이용할 때는 스마트폰을 벽에 세워 놓고 화상통화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물론 내가 블로그에 쓸 수 있을 만큼 희한한 경험을 제공해줘서 한편으로는 감사한 마음이 살짝 들어야 할 것도 같다. 하지만 함께 쓰면서도 매우 사적인 공간이기도 한 공중화장실에서는 나처럼 민감해하는 사람도 있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 NK News 팟캐스트 호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