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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지출마는 정치인에게 쓰라린 패배를 안겨줄 가능성이 더 크고, 불출마는 영원히 도태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주는 선택이다. 하지만 험지에서 당선되거나 불출마 후 재기한다면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가 된다. 어려움을 극복한 스토리가 있는 정치인이 되면 확고한 팬덤이 형성된다. 그런데 대체로 이런 모험을 선택하는 야심가들의 시선은 한 곳에 머물러 있다. 바로 대권이다.
● 종로 승리는 곧 대권…‘내려놓기’ 혈전
그럼에도 한국당 황 대표의 경우, 험지인 서울 종로에 출마하고서도 그 출발에선 일단 감동스토리로 시작할 타이밍을 놓쳤다. 황 대표는 ‘수도권 험지 출마’를 언급한 지 35일이 지난 7일에서야 종로 출마를 결정했다.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 1위 이 전 총리가 지난해 말 일찌감치 종로를 점찍자 언론들은 곧바로 2위 주자 황 대표를 지목하며 ‘종로 출마’ 여부를 묻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당은 수도권이면서도 당선이 가능한 지역을 검토하며 여러 지역구를 헤맸다. 원내 입성을 기반으로 대선 교두보를 마련한다는 플랜을 짜고 있던 황 대표 진영에선 압도적인 지지세를 보이는 이 전 총리와 굳이 맞붙어 패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결정이 길어지자 ‘겁쟁이 프레임’에 빠져버렸고, 결국 당 내에서도 ”사실상 선택의 여지없이 ‘종로 바닥’으로 나앉게 됐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이런 시선을 염두에 둔 것인지 황 대표는 유독 ‘자기희생’을 강조했다. 출마선언 당일 황 대표는 ”내가 죽어야 우리가 산다“ ”천 길 낭떠러지 앞에 선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만시지탄이지만 어쨌든 ‘당선 가능한 다른 험지’를 택하지 않고 종로 출마의 결단을 내렸기 때문에 황 대표는 ‘대선행 모험 열차’의 뒤칸에라도 가까스로 타게 됐다. 당의 한 관계자는 ”‘죽었다’ 생각하고 뛰다보면 지지율 격차를 좁혀갈 수 있고, 막판 ‘역전드라마’를 쓴다면 바로 대선행 고속도로가 열릴 것“이라고 희망에 찬 전망을 했다.
다소 결이 다르지만 당이 주는 부담을 떠안고 격전지에 출마하는 것은 민주당 이낙연 전 총리도 마찬가지다. 전남에서만 내리 4선을 한 뒤 전남지사를 지낸 이 전 총리를 둘러싸고는 정치권에선 ‘호남 후보 한계론’ ‘비주류 페이스메이커론’ 등 네거티브 프레임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 전 총리로선 ‘종로 대첩’에서 승리한다면 이런 프레임들을 일거에 타파할 수 있다. 종로 출마가 거론되던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퇴각하고 이 전 총리가 갑자기 종로에 등장한 배경엔 본인 뿐 아니라 여권 내부의 차기 대선 플랜이 깔려있지 않을 수 없다.
● 대선주자의 ‘교본’ 노무현식 정치실험
와신상담 끝에 1996년 총선 서울 종로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노 전 대통령은 양대 정당 후보(YS의 신한국당 이명박 후보와 DJ의 새정치국민회 이종찬 후보) 사이에 끼인 한낱 ‘험지 모험가’에 불과했다. 1998년 DJ의 국민회의에 입당한 뒤에야 종로 보궐 선거에서 어렵사리 부활하며 6년 만에 국회로 돌아왔지만, 2000년 16대 총선에선 ”지역주의 타파“를 주장하며 돌연 험지 부산으로 되돌아가는 도전을 했다가 또 낙선했다. 당장은 실패였지만, 길게는 ‘바보 노무현’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의 무모한 도전 속에서 진정성과 신념을 본 사람들 사이 팬덤이 형성된 것. 그렇게 만들어진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노사모)는 2002년 대선에서 노 전 대통령의 극적인 승리를 이끌어냈다.
● ‘노무현 모델’과 ‘DJ 모델’
이후 ‘제2의 노무현’을 향한 도전이 이어졌다. 경기 군포에서 내리 3선을 했던 민주당 김부겸 의원은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고향이긴 하지만 새누리당의 텃밭 대구 수성갑 출마를 선언했다. 김 의원은 출마 기자회견에서 ”민주당의 마지막 과제인 지역주의를 넘어서겠다“면서 ”김대중 노무현 제정구의 간절한 꿈, 오랜 꿈, 전국 정당의 꿈 반드시 이루겠다“고 했다. 그 역시 첫 도전에선 낙선이란 쓴 맛을 봤다. 하지만 졌지만 이긴 싸움이었다. 40.4%라는 적지 않은 득표를 한 그의 ”값은 치솟았고, 2016년 두 번째로 대구에 도전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대선주자 반열에 올라섰다.
한나라당 정몽준 전 대표가 20여 년 간 지켜 온 울산을 떠난 과정도 비슷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요청에 생소한 서울 동작을 지역구로 올라왔다. 정 전 대표는 직전 여당 대통령 후보였던 정동영 의원과 맞붙어 승리하면서 한나라당에서 입지를 다졌고, 오랜 무소속 정치인이었던 그가 여당 대표직까지 맡게 됐다.
여권에서도 ‘제도권 정치 은퇴 선언’을 한지 2개월 만에 “호남 선대위원장 맡아달라며” 민주당의 공개러브콜을 받고 있는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역시 ‘DJ 모델’로 들어서는 초입에 서 있다.
● ‘박근혜 모델’ 노리는 홍준표, 김태호
최근 노무현 모델이나 DJ 모델을 따라하는 정치인들이 많아지면서 험지 출마와 불출마가 주는 감동이 적어졌다는 시각도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 총선에서는 당선이 가능한 지역에 도전한 뒤 원내와 중앙정치 무대에서의 승부를 통한 대선을 노리는 이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수 년째 원외에 있는 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와 김태호 전 최고위원은 이미 지난해부터 ‘영남권 출마’ 또는 고향 출마를 기정사실화 했다. 홍 전 대표는 2017~2018년 금배지 없이 당 대표직을 수행할 때 소속 의원으로부터 “원외 당 대표가 왜 의원총회에 들어오느냐”는 소리를 들으며 수모를 당했다. 이에 홍 전 대표는 당시 “내 반드시 원내로 돌아온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국회라는 중앙 정치의 핵심에서 전국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여야 의원들과 섞이며 원내외 ‘내 사람’을 만들어 놓지 않고선 대선 경선과 본선을 치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홍 전 대표는 서울에서만 4선을 했지만, 이번엔 비교적 양지(陽地)인 고향 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에 출사표를 던졌고, 지금은 대선에서 맞붙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경남 양산 출마도 검토 중이다. 김 전 최고위원도 과거엔 당의 요청으로 험난한 싸움이었던 2011년 경남 김해을 보궐선거와 2018년 경남지사 선거에 도전해 승리하기도 했고 지기도 했다. 그런 그도 원외에서 4년 동안 유학 생활 등 산전수전을 겪은 뒤엔 이제 고향 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 선거를 준비 중이다.
이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 모델’을 꿈꾸는지 모른다. 박 전 대통령은 1998년 국회 입성한 이래 내리 5선을 하면서 불출마나 험지 도전을 전혀 선택하지 않았다. 원내에 있으면서 당 대표, 비상대책위원장 등를 맡아 꾸준히 친박(친박근혜) 사단을 양성했다. 이명박 정부 때 친이(친이명박)계들과 ‘세종시 수정안 본회의 표대결’을 펼치며 ‘여당 내 야당’ 이미지를 구축한 뒤 대권을 거머질 수 있었던 것도 박 전 대통령이 원내에 있었기 때문이다.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강성휘 기자 yol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