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3 콜럼버스가 문을 연 호모제노센 세상/찰스 만 지음·최희숙 옮김/784쪽·2만5000원·황소자리
콜럼버스적 대전환은 대륙 간 인종의 뒤섞임을 낳았다. 아프리카에서 소년 시절 포르투갈 노예상에 잡힌 후안 가리도(가운데 말을 잡고 서있는 사람)는 특유의 성격과 기회를 포착하는 안목으로 16세기 멕시코를 점령한 에르난 코르테스(오른쪽에서 네 번째)의 2인자가 됐다. 그림은 코르테스가 이른바 아즈텍 최고지도자에게 다가서는 장면이다. 황소자리 제공
저널리스트인 저자의 ‘1493 콜럼버스가 문을 연 호모제노센 세상’은 ‘콜럼버스적 대전환’이 빚어낸 세계화의 역사다. 1492년 12월 25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발을 디딘 이후 구대륙과 신대륙 간에 미생물 씨앗 가축 그리고 노예(인간)가 서로 옮겨지며 이뤄낸 ‘새로운 세상’의 발생사를 저자는 전지적 작가 시점처럼 살펴본다.
새로운 세상의 특징은 균질화, 동질화를 뜻하는 호모제노센(Homogenocene)이라는 말로 압축된다. 이질적이던 구대륙과 신대륙의 생태계가 비슷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유럽인들이 알게 모르게 가져간 세균 동물 식물이 만들어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메리카에 유럽의 식생을 이식한 셈이다.
또 세계화는 경제적 이득이라는 편익과 생태적, 사회적 혼돈이라는 비용을 동시에 치른다. 감자는 1840년대 대기근으로 아일랜드인들을 무참히 굶겨 죽였지만 17세기 아시아보다 훨씬 낙후됐던 많은 유럽인의 삶의 질을 높였다. 말라리아는 아메리카 원주민 80%를 사라지게 했지만 미국 독립과 노예해방을 앞당겼을 확률이 매우 높다.
책은 400년 전 세계화가 태동할 무렵부터 당시 사회가 맞닥뜨린 첨예한 이슈들은 오늘날과 판박이처럼 닮아 있다고 말한다. 살충제의 발명에 ‘맞서’ 바이러스가 염기서열 하나를 변형시켜 스스로 진화해 인류를 위협했던 것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공포에 시달리는 지금 상황과 다를 바 없다.
저자는 조지프 스티글리츠처럼 세계화의 불평등을 소리 높여 외치거나 환경운동가처럼 맹목적으로 생태 보호를 외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세계화의 시작이 중국과의 교역이라는 부(富)를 좇던 유럽인의 집착에 가까운 욕심에서 시작됐다는 점을 빼놓지 않는다. 농업 생태학 등 전문적일 수 있는 이야기를 흥미로운 인물들을 앞세워 쉽고 재미있게 풀어가는 저자의 능력은 부러울 정도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