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예지 글·살구 그림 | 폴앤니나
“봐라, 니 생긴 건 나를 쏙 뺐는데 성깔은 진경일 닮었고,
샐샐 눈웃음칠 때 보면 이쁜 것이 지영이 갸가 배서 났나 싶고,
맴씨 큼직허니 밥하는 거 보면 또 형민가 선영인가 긴가민가허고.
에이 시벌, 알 게 뭐냐!
닌 내 거시기여! 내 씨여, 내 씨!”
엄마가 누구냐는 질문에 이 무슨 어처구니없는 대답이람!
유치하고 엉뚱한 아빠는 똥구멍으로 나를 낳았다고 밤낮 우겨댄다.
어쨌거나 나는 아빠의 화실에서 자랐다.
이 세상에 아이가 오려면 두 사람이 필요한데 왜 세상에는 미혼모만 있고 미혼부는 없을까. 무슨 이유에서건 아이를 혼자 기르는 아버지가 분명히 있기는 할 텐데 세상이 그들을 미혼부라고 딱 꼬집어 부르지 않는 것이 얄미워서 최예지는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청년기에 몸을 막 굴리고(!) 방탕하게 놀아난 대가로(!) 개고생하는(!) 남자를 보고 싶다는 다소 못되고 나쁜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소설 속 아버지에게 그만 정이 들어버렸다.
불확실한 세상에 단호하게 선을 긋고 자기한테 주어진 몫을 흔쾌히 끌어안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 그것이 행복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이 사랑스러운 소설은 그렇게 태어났다.
●작가 소개
최예지
언제나 뻔한 사람. 1989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단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16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같은 해 현진건문학상을 받았다. 인스타그램 @yeahman_king
살구
본명 이은지. 두근두근 가슴이 설레는 소년 소녀의 감성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1988년 광주에서 태어나 네이버 그라폴리오에 ‘나의 순결한 행성’을 연재한 뒤 출간했다.
인스타그램 @salgululu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