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희 서울아산병원 임상심리전문가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중
고통에 직면했을 때 인간은 묻는다. “왜?”, “왜 나에게 이런 일이?” 그리고 고통이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은 고통 자체보다 그 고통의 의미를 찾지 못해서다. 고통의 의미를 찾고 싶은 것. 그것은 결국 삶의 의미를 찾고 싶다는 뜻이다. 내가 이 고통을 겪으면서도 살아야 하는 이유.
저자 빅터 프랭클은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으면서 그곳에서조차 다른 사람을 위로하거나 마지막 남은 빵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음을 목격한다. 그들은 다양한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 속에서도 단순히 환경에 이끌려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의 내적인 가치와 힘에 의해 자신의 행동을 선택할 수 있었다. 시련과 고통, 죽음 앞에서도 마지막 남은 내면의 자유, 그 상황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하는 자유는 빼앗기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병원에서 일하면서 고통 속에 있는 환자들을 만난다. 하루아침에 편마비(몸의 좌우 중 한쪽에 온 마비)가 된 환자, 사지가 절단된 환자, 기대 수명이 몇 달 남지 않은 환자. 삶의 의미가 없다고, 죽고 싶다고 호소하는 그분들께 나는 감히 어떠한 어쭙잖은 위로나 조언도 할 수 없다. 다만 그분들의 “왜?”라는 질문과 분노감이 합당한 것임을 확인시켜드릴 뿐. 그리고 모든 것을 빼앗긴 듯한 그들에게도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남아 있음을, 그러한 존엄성과 내적인 힘이 남아 있음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 그리하여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갈 힘을 낼 수 있도록 잠시 동반해 드리는 것. 그뿐이다. 지금 바로 이 순간에도 우리 앞에 닥친 수많은 상황 속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하는 자유는 여전히 우리 자신에게 있다.
박선희 서울아산병원 임상심리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