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 기자
봉 감독의 고향인 대구에서는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대구 달서병)이 “대구 남구에서 태어나 세계에 이름을 떨친 봉 감독은 한국의 자랑”이라며 “대구 신청사 앞 두류공원에 봉준호 영화박물관을 건립해 관광 메카로 만들겠다”고 나섰다. 그러자 대구 남구는 “봉 감독이 어렸을 때 살던 주택을 중심으로 영상문화사업이나 관광 콘텐츠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4·15총선에 출마하겠다고 밝힌 예비후보들 사이에서는 ‘봉준호 카페거리’ ‘봉준호 생가 터 조성’ ‘봉준호 동상’에 ‘기생충 조형물 설치’ 공약까지 등장했다. 온라인에서는 “서울 강남구 지하철 2호선 삼성역 옆에 있는 거대한 양손 모양의 ‘강남스타일’ 조각상이 떠오른다. ‘기생충 조형물’은 막아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기생충 기택(송강호)의 반지하 집 세트가 조성됐던 경기 고양시의 이재준 시장은 “세트를 복원해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이고 스토리가 있는 문화관광도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 반면교사가 ‘백남준 기념사업’이다. 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 선생이 1990년대 귀국했을 때 그의 명성에 기대어 각종 사업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적지 않았다. 기념관도 생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지금 그 결과는 참담하다.
백남준 작품의 저작권을 관리하는 ‘백남준 에스테이트’는 한국 미술계 누구와도 협조하려고 하지 않는다. 과거 저작권자에 대한 인식과 존중도 없이 백남준의 작품을 무단으로 사용하거나, 협의도 없이 백남준의 이름을 건 미술관을 세우려는 시도들이 신뢰를 허물었다. 올해 세계 5개 도시에서 백남준 회고전이 열리지만 국내 어떤 미술관도 여기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그의 작품세계를 고국에서 볼 수 없다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기생충 공약’을 내건 정치인과 지자체는 봉 감독이나 제작사 측에 저작권 문의라도 한번 해봤을까. 16일 귀국한 봉 감독의 미국 일정 전에 이들 공약이 쏟아진 걸 보면 매우 회의적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기생충’을 보기는 했을지도 궁금하다.
훌륭한 예술작품의 의미를 곱씹어 보기도 전에 자신의 이해관계나 정치적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은 가슴 아프다. 소프트파워는 정치적, 경제적 이득을 부가적으로 가져다줄 수 있다. 그러나 염불보다 잿밥에 눈이 어두운 식으로는 갈 길이 멀기만 하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