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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곳을 친 나폴레옹[임용한의 전쟁史]〈97〉

입력 | 2020-02-18 03:00:00


1796년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방면군 사령관으로 부임했다. 휘하의 주요 사단장들은 이 27세의 사령관보다 연상이었고, 실전 경험도 많았다. 나폴레옹의 실전 경험이란 3년 전 대위로 툴롱에서 포병을 지휘하고, 마지막에 8000 정도의 병력으로 돌격전을 지휘한 것, 파리에서 시민군을 향해 포를 쏘아댄 것이 전부였다.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연합군은 요새화되고 험난한 지형을 차지하고 있었다. 보통 이런 지역에서 공격으로 나가려면 적보다 압도적인 전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나폴레옹군은 병력도 열세였고 무장은 형편없었다. 불리한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병사들의 탁월한 전투력과 왕성한 전투 의지가 필요하다.

이 점에서도 나폴레옹군은 낙제였다. 프랑스 혁명으로 탄생한 군대는 병사들의 열정은 높았지만 훈련도는 낮았고, 병참 체제가 엉망이었던 탓에 군화조차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 나폴레옹은 이런 군대를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군 사이에 배치한다. 소위 중앙배치 전술이란 건데, 이런 포진은 “너희 둘이 한꺼번에 덤벼 봐, 얼마든지 상대해 줄게”라고 큰소리치는 것과 같다. 실제로 상대는 나폴레옹군을 치기 위해 움직였다. 그러자 나폴레옹은 가운데로 더 깊이 파고들며 적보다 빠르게 움직여 오스트리아군의 우측을 치고, 이탈리아군의 좌측을 쳐서 각개 격파한다. 군대의 측면은 치명적인 약점이다. 보통 두 적의 가운데에 포진하면 양쪽에서 동시에 적의 공격을 받게 되는데, 나폴레옹은 반대로 적의 측면을 때리는 기회로 삼았다.

나폴레옹 전술의 핵심은 전투의 결정적 지점을 파악하고 강타하는 것이었다. 그 결정적 지점의 하나로 나폴레옹은 두 군대가 만나는 경계를 꼽았다. 군단이든 사단이든 두 개의 선이 만나는 곳, 또는 연결점이 약한 곳이다. 다 아는 이야기 같지만 알아도 막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뻔한 논리를 순간의 아집과 이기심으로 실행하지 못하다가 패배를 헌납한다. 모르는 것을 깨닫는 것보다 아는 것을 실행하는 것이 더 어렵다.
 
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