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한미 연합 대규모 공중 훈련인 비질런트 에이스에 참가한 미 전략폭격기와 한국 공군 전투기 등이 훈련하는 모습. 군 당국은 2018년부터 비질런트 에이스의 명칭을 ‘전투 준비 태세 종합 훈련’으로 바꾸고 규모도 축소했다. 동아일보DB
손효주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군 관계자는 다음 달 시작될 한미 연합훈련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한미는 다음 달 초부터 북한의 남침을 가정해 전시 작전계획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실행해보는 지휘소 훈련을 진행할 계획이다.
문제는 이번에도 훈련에 이렇다 할 상징적인 명칭을 붙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군 당국은 이번 훈련 명칭을 ‘전반기 한미 연합 지휘소 훈련’이라는 일반적인 이름으로 잠정 결론 낸 것으로 알려졌다.
군의 훈련 명칭 ‘버리기’ 또는 ‘흐리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3월 키리졸브를 ‘동맹’으로 바꾸더니 8월엔 프리덤가디언을 아예 ‘후반기 한미 연합 지휘소 훈련’으로 변경했다. 명분은 ‘북-미 비핵화 협상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뒷받침하기 위함’이었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을 명칭으로 대체했다는 것.
이런 명칭 변경 조치는 북한에 대한 반격과 지휘부 축출 등의 훈련 시나리오가 포함돼 있어 북한이 유독 크게 반발하는 지휘소 훈련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앞서 군 당국은 양대 한미 연합 공중 훈련인 ‘맥스선더(Max Thunder)’와 ‘비질런트 에이스(Vigilant ACE)’도 각각 ‘연합 편대군 종합훈련’ ‘전투 준비 태세 종합훈련’이란 평이한 이름으로 바꾸는 등 ‘변경 릴레이’를 이어가고 있다.
물론 북한의 비핵화 진전과 도발 중단을 불러올 수 있다면 한눈에도 한미 연합훈련임이 분명한 ‘키리졸브’류의 영문 명칭을 없애는 것을 넘어 ‘무명(無名)’의 훈련을 한다고 해도 찬성할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한미동맹의 결의와 상징성이 실종된, ‘명칭 아닌 명칭’을 택한 로키(low key) 전략의 효과는 오히려 기대와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북한은 비핵화 추가 조치를 하지 않았고 대남 타격 전력인 신종 단거리 발사체를 지난해 5월부터 연이어 발사했다. 북한의 거꾸로 가는 행보는 올 초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충격적인 실제 행동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위협하는 것으로 정점을 찍었다.
북한은 군 당국이 그 규모를 축소하고 명칭까지 포기한 채 연합훈련을 시행하고 있음에도 훈련 때마다 “새로운 길을 택할 수 있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훈련 전면 중단 외에 어떤 조치도 소용없다고 공표한 것. 군 당국이 명칭 버리기를 더 이어갈 명분이 없는 셈이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초대형 방사포 도발 이후 이렇다 할 도발을 하지 않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된 탓에 군사활동이 위축된 결과”라며 “북한은 연합훈련 명칭 변경과 무관하게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이는 대로 도발 재개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명칭 버리기 전략이 실익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면 명분 잃은 전략을 포기하고 1년 넘게 실종된 연합훈련 이름을 되찾아올 필요가 있다. 복원한 훈련 명칭을 널리 알려 국민의 안보 불안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선회하는 편이 더 현명한 조치가 아닐지 생각해볼 일이다.
손효주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