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숙 2020년 신춘문예 시조 당선자
밤새 내 옆에 계시던 어머니는 연신 배를 문지르셨다. 어머니의 거칠어진 손끝이 수세미같이 까끌까끌해도 왠지 좋았다. 요동치던 배 속은 ‘엄마 손은 약손, 엄마 손은 약손’ 동글동글 주술을 행하듯 원을 그리는 엄마의 손에 어느덧 잠잠해졌다. 흥얼거리는 자장가를 더한 치료를 받은 배는 실없는 소리를 내며 이불 속으로 숨어들어 시큼한 냄새를 온 가족에게 공유시키곤 했다.
엄마를 차지한 밤은 내가 아프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런 밤은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고 다음 날 아침 멀건 흰죽은 아픈 나만의 특권이어서 좋았다. 흰죽으로 배를 채우고 아랫목을 다시 파고든다. 배를 쭉 깔고 다시 아픈 것처럼 혀 짧은 소리로 응석을 부린다. 가끔 떠오르는 어릴 적 그 풍경 속, 꽤 좋았던 내 연기가 실소를 머금게 한다. 밤새 엄마는 안절부절못했을 거라는, 잠을 쫓느라 힘들었을 거라는, 그런 건 까마득히 몰랐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그다지 손을 내밀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바삐 사느라 찌푸린 미간을 볼 새가 없었던 건지, 툴툴대는 말투가 부족한 애정에서 나오는 건 아닌지, 문을 크게 닫으며 들어간 방에서 혼자 배앓이를 한 건 아닌지….
“뭐야! 왜 이래, 무슨 일 있어?” 덥석 늦은 밤 들어오는 아들 녀석을 와락 끌어안아 본다. ‘기생충’ 영화에 캐스팅될 만한 어린 날 내 연기력보다 그날 밤 알면서도 신의 경지에 오른 연기를 해주신 어머니. 이제야 인생이 보인다는 구순의 어머니. 엄마! 나도 이제 조금씩 보이는 거 같아요. 받은 자양분을 조금씩 꺼내 놓으며 재연배우처럼 엄마가 되어 가고 있네요.
정인숙 2020년 신춘문예 시조 당선자